위기의 가족 범죄<상>
지난 5월 가정폭력을 당해 신고한 K씨가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들은 말이다. 결혼 3년 차인 K씨는 신혼 때부터 가정폭력을 겪었다. 처음엔 집에 있는 물건을 부수던 남편은 곧 K씨에게 폭언과 폭력을 퍼부었다. 목덜미와 머리채를 잡혀 집 안을 질질 끌려다니는 수준으로 폭력이 심해졌을 때 K씨는 수화기를 들어 112를 눌렀다. 이후 K씨는 보호기관과의 상담에서 신고 당시 경찰 대처의 아쉬움을 털어놨다.
피해자 보호 외면하는 사회
집안일로 여겨 처벌·대처 미지근
폭력 25만 건 신고, 입건 4만건 뿐
가정폭력 처벌 강화법 국회 계류
“경찰 권한 강화, 보호시설 확충을”
경찰도 답답함을 토로한다. 가족 간 범죄는 보통 집에서 일어나는 만큼 폐쇄회로(CC)TV 등 증거를 확보하기 힘들다. 수사 과정에서 진술이 바뀌거나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서울의 한 경찰은 “지난해 말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엄마가 칼을 들고 아이를 훈육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 엄마가 무섭다던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고 진술을 바꿔 곤란했다”고 회상했다.
경찰청 가정폭력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가정폭력으로 112에 신고된 24만8660건 중 입건 처리된 건수는 4만1720건이다. 증거가 부족하거나 처벌을 원치 않는 등의 이유로 입건되지 않는 경우가 20만 건이 넘는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 간 범죄)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70%가 폭행이고 15%는 협박인데 모두 반의사불벌죄”라며 “처벌을 원치 않으면 사건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지난 3월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가정폭력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논의 중이다. 전문가들은 보호조치에 필요한 절차를 줄이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 관련 기관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은구 경찰청 가정폭력대책계장은 “경찰의 긴급 임시조치는 효력이 48시간뿐이고 그 이상은 검찰과 법원의 허가가 필요한데, 결정까지 10일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며 “경찰이 먼저 조치한 뒤 법원 통제를 받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경찰이나 보호단체에서 격리 등을 하고 싶어도 보호시설이 충분치 않다면 대처하기 어려운 만큼 사회 인프라 확충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태윤·편광현 기자 lee.tae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