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이 前 국정원장 변론기 펴내
이병호 전 국정원장(79)의 변호를 맡았던 엄상익(65) 변호사가『국정원장의 눈물: 老人과 女王』이란 변론기를 펴냈다. 이 전 원장은 지난해 8월 자신을 접견하러 왔던 엄 변호사에게 위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항소심 중 검찰이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이 전 원장의 보석을 반대했을 때의 일이다.
엄 변호사는 책에서 당시 "이 전 원장의 눈에서 하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고 썼다. 변론기의 제목은 이 일화에서 나왔다.
엄 변호사의 책은 이 전 원장이 지난 14일 구속기한 만료로 석방된 지 약 일주일 뒤 출간됐다. 그의 변호를 맡으며 틈틈이 기록해왔던 내용이다.
국고손실죄의 경우 2심에서 업무상 횡령죄로 변경돼 1년 감형이 됐다. 대법원 선고가 미뤄지는 동안 이 전 원장은 감옥에서 감형된 형을 모두 채웠다.
"朴 전 대통령 관련 내용만 수정 요청해"
엄 변호사는 "이 전 원장은 출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소회나 비판적 내용을 담은 부분에 대해서만 수정 요청을 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이미 비참한 상황에 놓였고 '대통령을 모셨던 사람으로서 안타깝다'는 심경을 전했다"고 말했다.
엄 변호사가 구치소에서 이 전 원장에게 "보시기에 박근혜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이 전 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워낙 자폐적인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 이 좁은 감방에서 혼자 버텨낼 수 있는지도 몰라요. 국정원장을 3년 동안 했지만 나도 몇 번 보지 못했어요"
이 前 국정원장, 철창 밖으로 소리치기도
엄 변호사는 이 전 원장이 철창 밖으로 '내가 언제 돈을 횡령했느냐'고 소리를 치고 '내가 언제 정치에 관여했느냐'면서 허공에다 주먹질을 한 일화도 전한다.
엄 변호사는 이 전 원장의 변호인이면서도 그가 특활비 상납 혐의에 대해 "제대로 보고받은 적이 없다""그런 의도로 사용될지 몰랐다"는 주장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다.
엄 변호사 "특활비 상납은 적폐, 시대정신이 철퇴 내려"
엄 변호사는 이 전 원장에 대한 법원의 판단 이후 "정치권력이 국정원에 숨겨진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됐다"며 "이 전 원장이 대신 떠안은 세상의 죄를 세밀하게 보았다. 시대 정신이 이런 적폐에 대해 철퇴를 내린 것"이라고 썼다.
엄 변호사는 중앙일보에 "변호사로서 이번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전하고 싶었다"며 "꼭 법원 안이 아니라도 법원 밖에서 또 독자들에게 내 변론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