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이원준, 13년 만에 정상에 오르다

중앙일보

입력 2019.07.01 00:04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KPGA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이원준(오른쪽)이 발레리나 출신 아내 이유진씨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지난해 결혼한 이원준은 올 10월 아빠가 된다. [연합뉴스]

호주 동포 이원준(34)이 한국 프로골프 메이저 대회인 KPGA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승을 거뒀다. 2006년 프로에 데뷔한 지 13년 만에 거둔 첫 승이다.
 
이원준은 30일 경남 양산 에이원 골프장에서 끝난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1오버파를 기록, 합계 15언더파로 서형석(22)과 동타를 이룬 뒤 연장 첫 홀에서 천금 같은 버디를 잡아내 정상에 올랐다. 이원준은 우승 상금 2억원과 함께 2024년까지 KPGA 투어 출전권을 확보하게 됐다.

KPGA 챔피언십서 생애 첫 승
2006년 데뷔 뒤 부상으로 고전
키 1m90㎝, 320야드 장타가 특기
“부모님께 우승 트로피 바친다”

1m90cm의 거구 이원준은 320야드를 넘나드는 드라이브샷이 장기다. 큰 체구에 물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스윙으로 ‘빅 이지(big easy)’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프로 데뷔 이후 운이 따르지 않았다. 어릴 적 농구를 했던 그는 키가 어중간해 그만뒀다. 15세 때 골프를 시작했다. 평균 320야드, 필요하면 350야드를 넘는 장타가 압권이었다. 이원준은 아마추어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뒤 2006년 말 프로로 전향했다. 그는 21세이던 2007년 LG전자와 10년간 후원계약을 했다.
 
그러나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진출을 위해 미국 2부 투어에서 5년여를 보내다가 손목과 허리가 아파 골프를 그만뒀다. 2년여를 쉬다 재기해 일본 투어 출전권을 얻었지만, 다시 허리 통증이 도져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면서 프로 13년 동안 한 번도 우승을 해보지 못했다. 1, 2부는 물론 어떤 투어에서도 우승한 적이 없었다.
 
이번 대회에선 쉽게 우승하는 듯했다. 추천 선수로 이번 대회에 출전한 이원준은 1라운드 62타, 2라운드 64타를 기록하며 선두를 달렸다. 최종 라운드를 5타 차 선두로 출발해 손쉽게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하는 듯했다. 5번 홀에서 공을 물에 빠뜨려 더블보기를 했지만 8~11홀에서 버디 3개를 잡으면서 위기를 극복했다.


그러나 문제의 13번 홀(파5), 1m 거리의 퍼트를 못 넣어 보기를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추격하던 서형석은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냈다. 타수 차는 1타로 줄었다. 이원준은 바로 다음 홀에서 3m 거리의 버디 기회를 잡았지만,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17번 홀에서 보기를 범하며 서형석과 동타가 됐다. 이원준의 표정은 돌처럼 굳어졌다.
 
마지막 18번 홀. 페어웨이 양쪽에 워터해저드가 입을 벌리고 있는 까다로운 홀이다. 챔피언 조에서 첫 티샷을 한 서형석의 공은 왼쪽으로 갔다. 다행히 갤러리에 맞고 물에 빠지지는 않았다. 마지막 티샷을 한 이원준의 공은 페어웨이 오른쪽 워터해저드의 입구에 멈춰섰다. 다행히 공은 반쯤 보였다. 이원준은 물에 있는 공을 쳐 낸 뒤 세 번째 샷을 약 2m에 붙여 파세이브에 성공했다. 이원준으로선 지옥에 다녀온 셈이었다.
 
18번 홀에서 치른 연장전에서 서형석은 오르막, 이원준은 내리막 퍼트를 남겨뒀다. 거리는 약 3m로 비슷했다. 그러나 서형석의 퍼트는 들어가지 않았고, 이원준은 내리막 퍼트를 성공시켰다. 13년간의 한을 푼 순간이었다.
 
이원준은 우승을 결정짓는 버디 퍼트를 넣은 뒤 어머니, 지난해 결혼한 부인 이유진(31)씨와 껴안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의 아버지 이찬삼(63)씨는 현재 호주에 머물고 있는 바람에 우승 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 이원준은 “아버지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10년 넘게 고생하셨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우승을 바친다”며 “아직 PGA 투어 진출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잘 준비해서 다시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양산=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