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술탄 못되나” 확 달라진 알라딘의 마법

중앙일보

입력 2019.06.2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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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흥행 주역 자스민 공주. 원작보다 강인하고 지혜로운 캐릭터로 그려져 여성 관객들의 큰 지지를 얻었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보헤미안 랩소디’를 잇는 싱어롱 히트작이 탄생했다. 디즈니 뮤지컬 실사영화 ‘알라딘’(감독 가이 리치)이 개봉 34일차인 지난 25일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전날 흥행 역주행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한 데 이어서다. 흥행 속도로는 지난해 994만 관객을 동원한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엿새나 빠르다. 개봉 6주차인 27일 현재 예매율(35.3%)도 1위다. 새로 개봉한 ‘비스트’ ‘존 윅 3: 파라벨룸’을 크게 제쳤다. CGV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 23일까지 한 달간 평균 재관람률은 6.7%로 같은 기간 흥행 10위권 평균인 2.4%를 크게 웃돌았다.
 
영화는 사막 왕국 아그리바의 좀도둑 알라딘이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 지니를 만나며 펼치는 모험담이다. 1992년 전세계 흥행 1위,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부문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동명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했다.

관객 700만 넘은 실사영화 ‘알라딘’
당찬 자스민 공주에 여성팬 환호
볼거리 넘치고 메시지도 또렷해
주제가 ‘스피치리스’ 인기 급상승
‘라이온킹’ 등 디즈니 후속작 기대

1000개 남짓한 스크린에서 첫 주말 1위로 출발한 ‘알라딘’은  ‘기생충’ ‘토이 스토리 4’ 등 신작 공세에 밀려 한때 3위까지 떨어졌지만, 개봉 4주차 1위를 탈환했다. 실제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듯한 움직임·바람 등을 구현, 노래까지 따라 부를 수 있는 4DX 싱어롱 상영도 역대 최다인 53만 관객을 넘어섰다.
 

할리우드 스타 윌 스미스가 연기한 램프의 요정 지니.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초반 흥행을 이끈 건 가족관객이란 분석이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27년 만의 리메이크란 게 거의 한 세대 간격”이라면서 “과거 애니메이션을 본 부모가 실사판에 대한 기대를 갖고 어린 자녀와 극장을 찾기에 완벽한 콘텐트”라 했다.
 
시대변화에 발맞춘 변화도 눈에 띈다. 유색인종 배역을 백인이 연기해 논란이 되곤 했던 ‘화이트 워싱’도 피했다. 애니메이션에선 백인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더빙했던 아랍계 요정 지니는 스타 배우이자 래퍼 윌 스미스가 맡았다. 타이틀롤 알라딘보다 더 주목받은 건 자스민 공주 역의 나오미 스콧이다. 영화 ‘파워레인져스: 더 비기닝’, ‘미녀삼총사’ 리부트판 등에 출연한 인도계 영국 배우 겸 가수다. 싱크로율 높은 미모뿐 아니라 시대변화에 발맞춰 한층 지혜롭고 강인해진 공주 캐릭터로 큰 활약을 펼친다. 영화 제목이 ‘알라딘’이 아니라 ‘자스민’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원작에서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이 장면은 실사판에도 실감나게 구현됐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원작에서 아버지 술탄(최고 통치자)과 알라딘에 의존적이고, 미인계를 내세웠던 공주는 사라졌다. 이번 영화에선 여자니까 술탄이 될 수 없다는 아버지에 맞선다. 또 악당 자파와의 강제혼인을 수락하는 대신 발코니 밖으로 몸을 던진다. 알라딘과의 결혼이 곧 해피엔딩이던 원래의 결말도 공주 자신의 힘으로 꿈을 이루는 것으로 달라졌다.
 
“태풍이 날 쓰러뜨리려 해도 일어나/난 절대 침묵하지 않아.” 극 중 두 번 흐르는 그의 솔로곡 ‘스피치리스’에 “듣기만 해도 울컥한다”는 여성 관객이 많았다. 이런 호응은 흥행수치에도 반영됐다. 20~30대 여성 관객 비중이 두드러진다. 지난 23일까지 한 달간 CGV 극장 관객 중 여성은 67.5%로 남성의 두 배가 넘었다. 싱어롱 상영의 경우 관객의 76%가 여성, 특히 20~34세 관객이 66%에 달했다.
 
주제가는 각종 음악차트도 석권했다. 개봉 6주차인 현재까지 벅스차트 10위권에 ‘스피치리스’(3위) ‘어 홀 뉴 월드’(7위)가 모두 올라있다. ‘스피치리스’는 가온·멜론차트에서도 10위권을 지키고 있다.
 

다음 달 개봉 예정인 실사판 영화 ‘라이온 킹’.[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겨울왕국’의 ‘렛 잇 고’가 누가 뭐래도 나대로 살 거란 메시지였다면 ‘스피치리스’는 여성으로서 자각을 드러내는 한층 진보한 노래”라며 “지적이고 능동적으로 바뀐 공주 캐릭터가 현대적 여성상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이번 흥행 이유”라 했다. 이를 “디즈니의 전략”이라고 설명한 그는 “앞서 500만 흥행을 거둔 영화 ‘미녀와 야수’도 주인공 벨 캐릭터를 독립적이고 지혜롭게 묘사했다”고 말했다.
 
디즈니의 강세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음달 개봉할 ‘라이온 킹’은 1994년 원작 애니메이션에 이어 뮤지컬도 세계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정글북’ 실사판 영화로 실감나는 CG(컴퓨터그래픽) 동물 캐릭터를 보여준 존 파브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2월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도 기다린다. 이후 ‘인어공주’ ‘뮬란’을 비롯해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마녀를 주역으로 내세운 ‘말레피센트’ 2편 등의 실사판이 줄을 이을 예정이다.
 
디즈니는 지난달 자회사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어벤져스: 엔드 게임’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더해 ‘알라딘’까지 흥행하며 5월 한 달 동안에만 70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배급사 중 점유율(45.8%) 1위로, 2위 CJ ENM(242억원)과 큰 격차를 보였다. 1월부터 5월까지 총 매출액은 2082억원에 달한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픽사와 마블 스튜디오,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든 루카스필름에 더해 올 3월엔 21세기폭스를 사들이며 디즈니는 ‘제국’이 됐다”면서 “이제 디즈니의 경쟁자는 구글이나 넷플릭스다. 다른 스튜디오 중엔 적수가 없어보인다”고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