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이순형)는 권 의원의 1심 판결문 94~97페이지에 걸쳐 변호인 측의 ‘위법수집증거 배제’ 주장을 인정했다. 재판부가 문제 삼은 증거는 지난해 3월 검찰이 산업부 압수수색을 통해 수집한 서류들이다. 당시 압수수색은 권 의원이 고교 동창을 사외이사로 지명하기 위해 산업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파악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혐의와 관련없는 증거까지 수색
먼지털기식 수사 바뀔지 주목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압수수색 영장에도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피의자 이름과 죄명, 압수 대상 문건과 간단한 사유만 기재되어 있었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 기재 양식에 따르면 범죄 혐의 사실을 반드시 기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판단은 독수독과(毒樹毒果) 원칙을 적극적으로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독수독과는 ‘독이 있는 나무는 열매에도 독이 있다’는 의미로 위법한 방식으로 수집된 증거는 증거 능력이 없다는 형사소송법상 원칙이다. 그동안 사정기관이 해온 별건 수사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검찰이 기업이나 공공기관, 로펌 등에서 나온 휴대전화, 컴퓨터 자료들을 샅샅이 들여다보면서 수사와 관련 없는 기밀까지 유출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서정욱 변호사(법무법인 민주)는 “지금까진 넘어갔지만, 이제부터 판사들이 검찰이 가져온 증거들을 현미경처럼 살펴보겠다는 심산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재판부도 이런 원칙을 이어갈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피고인들도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은 의혹의 핵심 증거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 속 문건들에 대해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이 위법해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