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껍질 튀김의 위력은 강남역 점 개점 직후에 드러났다. 개점 7분만에 매장 직원은 “주문 시 30분 이상 걸린다”고 외쳤다. 혼자 매장을 찾은 대학생 이모(23)씨는 “기다려서 먹어볼 만하다. 벌써 대기 30분이라니 오픈 15분 전에 와있길 잘했다”고 뿌듯해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대기 줄이 더욱 길어지자 ‘대기시간 15분 남은 영수증’을 웃돈 주고 판매하겠다는 ‘닭 껍질 튀김 암표상‘까지 출연했다.
이날 노량진역점에선 준비된 수량(930인분)이 오전 11시30분 품절되는 기록을 세웠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 6개 지점에서 모두 완판되면서 총 5400인분의 닭 껍질 튀김이 팔렸다. KFC 관계자는 “국내산 닭 가슴살에서 껍질을 떼어내는 작업을 모두 손으로 해야 해 많은 수량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괴식 인증에 집착하는 밀레니얼
대한민국이 ‘괴식(怪食·기이한 식습관)’에 푹 빠졌다. 맛을 좇는 게 아니라 ‘닭 껍질 튀김’ 같은 특이한 식단에 열광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웰빙’이나 ‘유기농’ ‘채식’이 외식업계 화두였던 것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트렌드다. 괴식을 좇는 소비자는 지독하게 짜거나 단 식품, 외형이 신기한 먹거리, 어울리지 않은 조합으로 구성된 메뉴를 찾아다니면 반드시 소셜미디어에 인증하는 특징이 있다.
맛을 위해 찾는 것이 아니라 급속히 번지고 한 번 맛본 뒤 잊히기 때문에 빠르게 소멸한다. 잘 먹지 않는 특수 부위인 돼지 꼬리 구이, 온갖 재료를 다 넣어 햄버거 크기로 만든 ‘뚱뚱이 마카롱’, 머리가 띵할 정도로 당도를 높이고 타피오카 펄을 넣어 만든 대만 흑당(흑설탕) 버블티 등 최근 유행한 식품은 대부분 괴식에 속한다.
이런 유행은 트렌드에 민감한 10~20대가 주로 이용하는 치킨 프랜차이즈 메뉴, 편의점 메뉴에 그대로 반영된다. 치킨 프랜차이즈 멕시카나는 김치를 볶아서 닭에 뿌린 ‘미스터 김치킨’, 짬뽕 소스와 오징어 볼과 함께 볶은 소스를 닭에 버무린 ‘오징어짬뽕치킨’을 신메뉴로 내놓았다. 밀레니얼은 이런 메뉴를 맛본 뒤 ‘먹어보았다’는 사실을 인증하고 ‘두 번 다시 주문하지 않겠다’는 해시태그를 넣어 마무리한다.
편의점 메뉴의 실험은 더욱 과감하다. 편의점 GS25는 자체브랜드(PB) 상품으로 ‘미니언즈 초코스틱 핫 치킨’맛을 신제품으로 선보여 인증템으로 인기를 끌었다. 초콜릿과 매운 치킨을 섞어 맛있을 리가 없는데도 궁금하게 해서 사게 하겠다는 의도다. CU의 경우 생크림과 수박을 섞은 수박 샌드를 신제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이나 과자 간편식을 뒤섞어 ‘나만의 괴식 메뉴’를 실험하는 것도 대유행이다. 감자칩을 우유에 불려 감자 샐러드로 만들어 먹거나 컵라면에 콜라나 우유를 넣어 먹는 식이다.
웰빙에 역행하는 일종의 ‘반문화’
괴식 트렌드는 기존 식품회사도 이어가고 있다. 최근 괴식 실험이 가장 두드러진 업체는 농심이다. 자사의 인기 제품을 섞어서 독특한 ‘이종 먹거리’를 내놓고 있다. 최근에 가장 화제가 된 제품은 ‘포테토칩 육개장 라면 맛’이다. 두 스테디셀러를 섞어 편의점에서 없어서 못 파는 인기 제품이 됐다. 과자 쫄병을 라면 짜파게티와 섞어 ‘쫄병 짜파게티맛(커피우유맛도 나왔다)’을 내놓았고, 스낵 인디언밥에 랍스타 맛 조미료를 섞은 ‘에스키모밥’, 비빔면에 참치와 마요네즈를 첨가한 ‘농심 참치 마요 비빔면’도 괴식 유행이 낳은 변종이다. 다른 식품 업체에서도 ‘쌈장 라면’(삼양), ‘도미 덮밥 맛 감자칩’(해태), ‘막걸리카노’(국순당) 괴식을 테마로 한 신제품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전영선ㆍ최연수 기자 az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