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뉴스]대구 헌혈남매 …시각장애 오빠는 100회, 여동생은 30회

중앙일보

입력 2019.06.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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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은 헌혈자의 날 

대구시 중앙로 헌혈의 집에서 오빠 하영철씨(오른쪽)와 여동생 하승희씨가 함께 누워있다. [사진 하승희씨]

대구시 중앙로에 있는 '헌혈의 집'엔 거의 2주에 한 번씩 헌혈하러 오는 B형 남매가 있다. 손을 잡고 헌혈의 집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오는 대구 '헌혈 남매', 하영철(37)·하승희(26·여)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 남매가 헌혈을 함께 하러 오는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하영철씨는 시각장애인이다.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1급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좋지 않았던 그는 중학교 졸업 후 원인 불명으로 시력을 잃었다. 여동생이 오빠의 손을 잡고 헌혈의 집을 찾는 이유다. 

여동생, 시각장애 오빠와 함께 헌혈 동참
"200회 300회 헌혈 계속 하고 싶다"
"헌혈 통해 이웃사랑, 헌혈 도전했으면"

남매의 헌혈 출발점은 2004년이다. 하영철씨가 먼저 적십자 병원에서 첫 헌혈을 했다. 지인들과 우연히 병원을 찾았다가, 헌혈 권유를 받고서다. 그는 "헌혈을 통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시작하게 됐다. 시각장애인이지만, 혈액 나눔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만으로 기쁘다"고 말했다. 
 

대구 헌혈 남매. 오빠 하영철씨와 여동생 하승희씨. 대구시 중구에 있는 하승희씨 집 앞이다. [사진 하승희씨]

헌혈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혈과 성분 헌혈로 나뉜다. 전혈은 일반적으로 혈액을 뽑는 방식이다. 두 달에 한 번 정도만 할 수 있다. 성분 헌혈은 혈소판 등 필요한 혈액 성분만 추출하는 방식이다. 혈액을 몸에서 한 번에 뽑아내는 게 아니어서, 2주에 한 번씩 헌혈이 가능하다. 
 
이렇게 하씨는 2004년 시작으로 2주에 한 번 또는 두어 달에 한 번씩 지속해서 헌혈했다. 최근까지 한 헌혈 횟수는 100회. 오는 14일 헌혈자의 날을 전후해 대한적십자 헌혈 유공장인 '명예장'을 받을 예정이다. 


이웃사랑 실천하는 헌혈 남매

대구시 중앙로 헌혈의 집. 동생 하승희씨가 침대에 기대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하승희씨]

동생 하승희씨는 오빠를 챙겨 헌혈의 집을 찾아다니다가 2009년부터 자연스럽게 헌혈에 동참했다. "헌혈을 같이해보자. 헌혈을 통해 스스로 건강도 확인해볼 수 있고, 힘든 이웃까지 도울 수 있지 않으냐"는 오빠 권유에 따라서다. 헌혈을 시작하게 된 하씨는 최근까지 30회 헌혈을 마쳤다. 대한적십자사가 정한 '은장' 자격을 갖췄다. 
 
그는 "얼마 전 지인을 통해 수혈이 필요한 분의 사연을 듣고, 가지고 있던 헌혈증서 20장을 전달한 적이 있는데, 그 뿌듯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헌혈증서 1장은 병원에서 수혈받은 혈액 1팩의 가치를 지닌다. 병원에 헌혈증서 1장을 전하면, 치료 중 수혈받은 혈액 1팩만큼이 차감되는 방식이다. 
 
대구 헌혈 남매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헌혈을 하겠다고 했다. 하영철씨의 이야기다. "200회를 넘어, 300회 헌혈이 목표입니다. 시각 장애가 있지만, 헌혈이라는 행위를 통해 나보다 몸이 더 불편한 이웃을 계속 돕고 싶습니다." 하승희씨는 "헌혈을 하면 건강을 돌아보고, 봉사 시간까지 받을 수 있다. 보다 많은 사람이 헌혈에 동참했으면 한다"고 했다. 
 
김은혜 대한적십자사 헌혈대외협력팀 과장은 "동절기와 하절기 외출을 자주 하지 않을 시기엔 보유한 혈액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웃 사랑 실천을 위해 '사랑의 헌혈'에 더 많은 사람이 도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