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기준연도 변경으로 국가채무비율을 둘러싼 논란이 흐지부지된 건 사실이다. “국가 채무는 절대로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을 수 없다”던 외침도 기댈 곳을 잃었다. 사실 그간의 국가 채무비율 논쟁은 다분히 소모적이었다. 40%를 깨도 된다는 정부·여당이나 안된다는 야당 모두 뚜렷한 근거는 없었다. 그저 나랏돈을 풀겠다는 쪽과 막겠다는 쪽의 해묵은 정치 논박일 뿐이었다.
“수출·성장률 등 대외 불확실성” 강변
청와대 수석이 정책 자랑만 해서야
한국형 국가 채무 마지노선 필요
우선 사회·지정학적 여건이다.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제일 빠르고, 아기 울음소리는 사라져 간다. 통일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만큼 재정에 여력을 둬야 한다.
둘째, 공공기관 부채다. 한국은 700조원 대에 이르는 국가 채무 말고도 500조원 넘는 공공기관 빚이 있다. 여차하면 나라가 대신 갚아야 한다. 셋째, 한국에는 1500조원을 넘는 가계부채가 있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83%에 이르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31%)보다 훨씬 많다. 재정이 흔들리면 이런 가계부채 문제가 폭발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국가 채무비중이 GDP의 40%를 훌쩍 넘어도 괜찮다”고 선뜻 말하기 쉽지 않다.
차제에 한국의 특수성을 살펴 우리의 채무 비율 마지노선을 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재정·경제·금융·인구·복지·통일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재정 상황별로 닥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우리 경제와 재정이 견딜 수 있는지 ‘스트레스 테스트’를 해야 한다. 그 결과를 놓고 국민을 설득해 채무비율 마지노선 같은 건전재정 운영 준칙을 세우는 게 시급하다. 곳간의 빗장을 푸는 건 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