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게 외교에선 영 딴판이다. 청와대 눈치를 보다 아니다 싶으면 꼼짝을 않는다. 그리고 방치한다. 대일 외교부터 보자. 지난해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이후 우리 정부는 8개월 동안 일본의 대화 제의에 일절 응대하지 않았다. 뭔가 나름의 비전과 소신이라도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와 미국과 여론의 압박이 있자 부랴부랴 G20 정상회의 때 한일정상회담을 하려고 달려든다. 만난 들 일본이 “이제 사이좋게 지내자”고 할 것 같나. 때가 있는 법이다. 그래야 협상력도 나온다. 일본은 항공모함과 같다. 방향을 틀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방향을 틀면 무섭게 돌진한다.
수단을 목적으로 삼으니 외교 꼬여
키신저의 말 “국익만이 영원하다”
우린 왜 ‘코리아 퍼스트’ 못 하나
이스라엘 외무장관이던 시몬 페레스가 생전에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에 이렇게 물었다 한다. “총리님, 왜 그렇게 문제 많은 모세 다얀(외교·국방장관 역임)을 늘 곁에 끼고 계십니까.” 벤구리온의 답은 이랬다. “말해줄까. 다얀은 100개의 아이디어가 있어. 그중 95개는 위험해. 그리고 3개는 (현실에) 안 맞아. 그런데 나머지 2개가 기가 막히게 훌륭해.” 다얀의 창의적 발상, 그리고 그걸 골라 채택한 지도자 벤구리온의 혜안 덕분에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와의 ‘6일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영토를 세배로 늘렸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다얀과 벤구리온이 있는가.
두세 발짝 느린, 비에 젖은 낙엽처럼 바짝 엎드린 우리 외교 위기의 정점에는 외교 철학의 부재가 있다. 강대국에 둘러싸이고 북한과 대치하는 우리에겐 올바른 우선순위 설정이 필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걸 ‘한반도 평화’에 뒀다. 나머지 한·일, 한·중, 나아가 북한 문제도 수단으로 여겼다. 수단에 불과하니 “감정이 상한다”,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내팽개칠 일도 없었다. 철저한 실리위주 국익 외교였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어떤가. 우선순위는 ‘북한’이다. 모든 주변국 외교는 수단 아닌 목적으로 접근한다. 목적에 안 맞으면 다가가질 않는다. 그러니 상대방의 불신은 깊어지고 관계는 꼬인다. 국익은 증발한다. 키신저는 “미국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국익만이 영원하다”고 했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