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까지만 해도 이 장소는 1년에 1~2회 밖에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지검장 이‧취임식 외에는 쓸 용도가 없었다고 합니다. 1000여명 중앙지검 직원을 모두 모아 놓고 지검장이 조회를 하는 모습도 이젠 거의 사라져 방치된 장소였다고 합니다.
다목적홀로 개조해 직원 복지에 쓰자는 아이디어는 조은석 당시 서울고검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뜻을 모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법무연수원장을 맡고 있는 조은석 고검장은 “권위적이고 비효율적인 공간을 직원과 민원인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개선하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중앙지검 검사실에는 최근에 메모가 가능한 의자가 설치되기 시작된 점도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대학 캠퍼스에서 볼 수 있는 간이 책상이 달린 의자를 가리킵니다. 법무부가 피의자와 변호인의 메모를 허용하도록 검찰사건사무규칙 개정안을 지난해 10월부터 시행하면서 검사실에서 시작되는 작은 변화라고 합니다.
대검찰청은 이 의자를 전국 모든 검찰청 검사실에 비치할 예정입니다. 꼿꼿하게 앉아 10시간 이상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아야 했단 과거 검사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는 풍경입니다. 검사실 내 폭행이 남아있던 시절에 활동했던 변호사들은 “검사실 내 철제 의자는 보기만 해도 반감이 들었다”며 “요즘엔 메모지와 볼펜을 챙겨주는 검찰청도 생겨나 당황스럽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7~8년 전만해도 검사실에서 수사관 질문에 변호사가 끼어 들면 뒤에서 검사가 ‘한 번만 더 말하면 퇴장시킨다’며 압력을 주는 분위기였다”며 “이젠 검찰도 심리 압박으로 자백을 받아내기 보다 법정에서 증거로 다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부터는 검사실에 웹캠도 설치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지금까지 피의자가 동의하면 영상 녹화실에 따로 들어가야 진술 촬영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영상 녹화실이 검찰청 내부에 제한된 곳에서만 설치 돼 있어 번거로운 점이 있었습니다.
웹캠을 설치하면 피의자가 동의하에 진술 과정을 간편하게 촬영할 수 있어 인권 침해도 막을 수 있고 나중에 법정에서 진술 조서를 놓고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도 방지할 수 있다는 게 검찰 내 시각입니다. 대검찰청은 우선 시범 실시할 검찰청 3곳을 올해 안에 지정할 계획입니다.
유 변호사 측은 “수십년간 당연하다는 듯 검찰 조서를 증거로 인정했지만 세계 어느 선진국도 검사의 피신조서로 재판하는 경우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대법원 수석연구관을 지낸 ‘에이스’ 판사였던 유 변호사가 직접 검찰 조사를 받아보니 고개가 갸우뚱 거려지는 부분이 많았다고 합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지난 1월 세 차례에 걸쳐 27시간 동안 검찰 조사를 받고 그보다 긴 36시간 30분을 조서 열람에 썼습니다. 현재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에서 “검찰 공소장은 근거 없는 것이고 소설의 픽션 같은 얘기”라고 주장합니다. 검찰도 “조사 과정이 전부 영상녹화됐다”며 “그런 주장을 계속할 경우 영상녹화 CD를 법정에서 틀어보도록 검증을 신청하겠다”고 맞서고 있죠.
패스트트랙으로 올라간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돼 피신 조서가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검찰 조직과 수사 체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전망입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의자 주변을 샅샅이 뒤진 다음에 궁지로 몰아 압박으로 자백을 받아 내는 수사는 없어질 것”이라며 “법정에서 인정될 수 있는 증거를 찾아내기 위한 창의적인 수사 방법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법원의 인력과 구조를 감안했을 때 검찰 조서 증거 능력을 갑자기 없애는 건 시기 상조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순천지청장 출신인 김종인 변호사는 “다른 사람에 대한 수사에 협조해 자신의 형량을 낮추는 플리바게닝과 같이 재판을 신속하게 바꾸는 제도가 뒷받침 돼야한다”며 “섣부르게 형사소송법을 개정한다면 돈 많은 사람들이 장기간 열리는 재판에 유리해져 무전유죄·유전무죄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