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헌신·오해…. 이런 키워드에 내년 총선을 기필코 승리로 이끌겠다는 양 원장의 절박함이 담겼으려니 하면서도 한편으론 의아했다. 바뀐 규정상 받을 수도 있었던 멀쩡한 월급인데 무슨 그리 큰 오해를 받는다고 고사한 걸까.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나 장하성 주중대사처럼 수십, 수백 억원대 자산가도 아니고 교사 아내를 둔 기자(언론노보)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관 경력이 사실상 경제활동의 전부인데 무슨 쌓아둔 돈이 있어 월급을 마다할까. 뉴질랜드로, 일본으로, 또 미국으로 떠돌았던 지난 2년간은 뉴질랜드 사는 형 도움도 받고 지난해 3만 권 팔았다는 책 인세(출판계 관행상 4500만원으로 추정)로 그럭저럭 충당했다 쳐도 앞으로는 무슨 돈으로 다양한 비용들을 감당하려 하나. 판공비를 사적으로 쓸 수도 없는 노릇인데 엄청난 자기절제를 필요로 하는 대단한 희생이 아닐 수 없다.
양정철, 오해 싫다며 월급 고사
‘사적 회동’의 비싼 밥값 궁금
‘컬링과 커피믹스’ 교훈 새겨주길
4시간 넘도록 민감한 얘기 하나 안 했다는 해명을 믿기도 어렵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소소한 궁금증은 여전히 남는다. 식당주인은 진작에 각자 밥값 계산했다고 딱 한 마디만 했으면 좋았을텐데 굳이 “백수인 줄 알고 택시비는 대신 냈지만 밥값은 누가 냈는지 말 할 수 없다”고 입을 다물었고 양 원장은 “현금 15만원을 미리 (본인 식사비로) 냈다”고 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판공비일까, 개인돈일까. 사적 모임이라면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가야 마땅하지만 월급 한 푼 없는 양 원장이 교사 아내에게 용돈 받아 냈을 것 같지는 않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 같은 심각한 정치적 공방이 오가는 마당에 한 끼 밥값이 어디서 나왔는지가 무슨 대수냐고 타박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문제는 아니다. 양 원장의 취임 이후 벌어진 일련의 소동을 지켜보면서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불거진 여자컬링 횡령사건 당시 한 직장인이 SNS에 쓴 글 하나가 떠올랐다. 야근비를 제대로 챙겨주는 회사가 드물던 시절 첫 직장에서 만난 부서장은 “야근 하면 반드시 야근비를 청구하라”고 주문했단다. 몇 시간이라도 공짜로 일해준다는 생각이 들면 처음엔 회사에서 커피믹스 한두 개나 A4 용지 하나 정도 집에 가져가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결국엔 회삿돈과 개인돈 구분이 없어져 큰 부정을 저지르게 된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이 직장인은 ‘컬링 대부’ 김경두 일가가 ‘팀킴’ 상금을 횡령한 건 용납할 수 없지만 자기 땅을 무상으로 기증까지 했던 그들 눈엔 이 정도 상금은 평생 헌신한 대가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내돈, 남의 돈 경계가 모호해지는 건 물론이요 헌신의 청구서를 내미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얘기다. 이슬 말고 강남 한정식 먹는 실세가 헌신을 내세워 무월급 선언한 걸 마냥 선의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양 원장은 이 정권에 부채를 떠안기지 말고 지금이라도 일한만큼 월급을 받으면 좋겠다. 그게 정권과 본인 모두에게 혹시 닥칠 지 모를 불미스런 일을 방지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