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방글라데시, 잘 사는 나라 아니지만 난민 수용”

중앙일보

입력 2019.05.28 16:41

수정 2019.05.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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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난민기구(UN HCR)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이 28일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미얀마의 로힝야 난민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2017년 8월 로힝야 반군과 정규군의 충돌을 계기로 올해 1월까지 1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대다수인 91만명가량이 접경 지역인 방글라데시로 넘어왔고 그중 74만명이 쿠투팔롱 콕스바자르 지역 난민 캠프에 둥지를 틀었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로힝야 난민을 위해 국경을 열어놓겠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다. 74만명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시 전체 인구 규모라고 한다. 
정우성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는 지난 19~23일 쿠투팔롱 난민 캠프의 현지 점검을 하고 돌아왔다. 2017년 12월 이후 21개월 만의 재방문이다. 정 대사는 28일 기자들과 만나 “방글라데시 정부와 주민들이 관용을 보여줬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다음은 정 대사와의 일문일답 요약.  
 
현지 상황은 어떤가.

“쿠투팔롱은 삼림지대에 만들어져 있는 캠프다. 산동네 느낌이 나 개인적인 경험이 생각나기도 했다. 길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노는데 그 옆에는 오물들이 흘러내린다. 2017년보다는 많이 개선됐지만 식수라든지 환경문제, 아이들의 교육 환경 등이 아직 부족하다. 조리를 위한 LPG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문제도 필요하다. 나무를 캐러 아이들이 멀리까지 갔다가 범죄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 19~23일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로힝야 난민캠프를 찾은 정우성 UNHCR 친선대사. [UNHCR 제공]

 
난민 수용 문제는 현지인들과의 조화 여부가 관건이다. 주민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쿠투팔롱의 주민들은 굉장히 호의적으로 이들을 받아들였고 같이 생활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주민들의 인권과 인간 본연에 대한 존중은 그 어떤 선진국보다 훌륭하다고 느꼈다. 방글라데시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아님에도 국경을 열고 광활한 대지를 난민들에게 내줬다. 이처럼 세계 난민의 8할이 선진국이 아닌 소위 저소득 국가들에서 보호되고 있다. 다만, 갑작스럽게 인구가 늘어나면서 식수라든지 환경 문제가 열악해진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 상황이 장기화하면 서로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난민 유입이 증가하면 그들이 주민들의 경제활동을 침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현실은 어떤지.  

“난민 캠프가 조성되며 필요 물자들이 생긴다. UNHCR의 원칙은 해당 지역에서 필요 물자를 지역사회에서 구매해 지원한다는 것이다. 삶의 터전을 양보해주고 배려해주는 지역 주민들에게 희생만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인접 지역의 경제가 활성화된다. 또 난민촌 안에서 나름대로 상거래가 일어난다. 피신할 때 가지고 온 재산 등을 그 안에서 사고판다. 이렇게 되니 난민에 대한 반감도 줄어들고 서로가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

이달 19~23일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로힝야 난민캠프를 찾은 정우성 UNHCR 친선대사. [UNHCR 제공]

 
로힝야 난민을 직접 만났는데 인상 깊은 일화가 있다면.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2017년 8월 폭력 사태로 인해 넘어오면서 대다수가 남편이나 아이가 살해당한 모습을 직접 목격한 이들이다. 현지 방문 때 한 할머니가 조용히 와서 ‘내가 딸이라고 데려온 사람은 실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더라. 해당 여성의 남편이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함께 국경을 넘는데, 할머니가 자기 딸이라고 보호해 데리고 왔다고 한다.”

 
다음 달 자서전 제목이『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이다.  

“UNHCR 친선대사로 다년 간 활동하면서 경험한 내용을 담았다. 난민을 들여다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조금 더 나와 생각이 비슷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지은 제목이다. ‘난민’이라도 우리가 갖고 있는 삶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란 걸 알리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을 집단화하면서 평가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달 19~23일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로힝야 난민캠프를 찾은 정우성 UNHCR 친선대사. [UNHCR 제공]

 
UNHCR은 올해 공동대응계획(JRP)을 통해 9.2억 달러(1조원)의 예상 모금액을 설정했다. 방글라데시 내 로힝야 난민을 비롯한 기타 내전 피해자 등을 위한 120만명의 식량ㆍ보건 사업을 위해서다. 그러나 목표액의 17.5%가량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로힝야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외무부 장관 등을 접촉할 계획이 있나. 

“국제기구의 인도주의 대사인 만큼 정치인들을 만나도 인권에 대한 존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정치적인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아세안의 인접국, 무엇보다 한국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린다.”

 
한국에선 제주도의 예멘 난민 유입 등을 계기로 난민 집단 수용에 반대하는 여론도 제법 많은 편이다. 개인적으로 악플도 많이 달릴텐데.  

“알고 있다. 아이 엄마의 우려, 청년으로서 (직업 잠식에 대한) 우려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같이 안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건, 대한민국 역시 역사적으로 1000번 넘는 침략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어려움에 처한 주변 나라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런 국민의식이 있는 나라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러면 만에 하나 다음 세대에 한반도에 국가적인 위기가 생겼을 때 다른 나라에서 우리를 도와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