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최은혜 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 사진=임익순·송휘성(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김가영(용인 신봉초 5)·신유림(경기도 어정중 1)·장희우(경기도 위례푸른초 5) 학생기자, 자료=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아
9명의 청소년이 시작한 파쿠르
파쿠르는 ‘길’ ‘코스’ ‘여정’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파쿠르(parcours)’에서 유래했습니다. 도시 혹은 자연환경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애물을 신체적·정신적으로 극복해내는 움직임 훈련이에요. 1980년대 프랑스의 ‘에브리’라는 지역에서 그 시초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에브리는 거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도시였고, 무슬림·힌두교도·흑인·아시아인 등 다양한 종교·인종·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길거리 싸움이나 화재, 기물 파손 같은 일들이 자주 일어났고 범죄도 끊이지 않았어요.
최근 파쿠르는 스포츠 종목으로 발전하는 양상도 보이는데요. 지난해 12월, 전 세계 기계체조 단체를 관할하는 국제체조연맹(FIG)은 파쿠르를 8번째 기계체조 종목으로 결정했어요. 올 9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릴 세계도시경기대회(World Urban Games)도 파쿠르와 함께 프리스타일 롤러스케이트, 3대3 농구, BMX 프리스타일, 프리스타일 플라잉디스크, 브레이크 댄스 등을 정식 종목으로 선정했죠. 하지만 경쟁과 비교를 지양하고 이타주의(행동의 목적을 다른 사람의 행복에 두는 것)를 추구하는 파쿠르가 점수·표준화·경쟁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로 변화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습니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열린 파쿠르
준비운동으로 몸을 충분히 풀어준 뒤 본격적인 동작 연습에 들어갔어요. 공터에 마련된 갖가지 장애물들을 손과 발을 이용해 넘어가는 ‘볼트’ 동작들을 배워보기로 했죠. 먼저 ‘스텝 볼트’ 시범을 보인 김 코치를 따라 참가자들은 장애물의 높이를 점점 높여가며 동작을 연습했습니다. 그 다음 ‘옆돌기 볼트’ ‘사이드 볼트(투핸드 볼트)’ ‘스피드 볼트(원핸드 볼트)’를 차례로 익혀 나갔죠.
이날 ‘모두의 힘센 발 파쿠르’에 두 번째로 참가한다는 이지이(아시아퍼시픽 국제외국인학교 7)양은 장애물 바로 앞까지 달려왔지만 겁을 먹는 바람에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다시 동작을 정확하게 연습한 뒤 다시 장애물을 향해 달렸죠. 드디어 뛰어넘기 성공! 이양은 “장애물을 못 넘다가 넘으니 엄청 뿌듯하고 재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참가자 중 몸집이 제일 작았던 박서진(서울 신구초 2)양은 아직 키가 작아 언니·오빠들처럼 멀리 점프하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했어요. 박양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게 힘들고 조금 무서웠지만 그래도 재밌었다”고 말했죠. 한편, 파쿠르 경험이 많은 듯 익숙하게 동작을 연마하던 두 친구 강희재(경기도 신흥중 1)·한창우(경기도 생연중 1)군은 “유튜브에서 우연히 김 코치님의 영상을 보고 동네에서 파쿠르 연습을 하곤 했다”고 귀띔했어요.
지난 3월부터 토요일마다 열리고 있는 ‘모두의 힘센 발 파쿠르’ 수업은 다음 달 15일까지 계속됩니다. 이후 김 코치의 유럽 파쿠르 축제 참여로 약 한 달간 쉬었다가 9월부터 다시 수업을 진행한다고 해요. 매주 15~20명이 참가하는데 이 중 80% 정도는 초·중학생입니다. 파쿠르를 한 번도 해본 적 없어도 수업을 들을 수 있죠. ‘모험을 즐기되 주변을 살피고 스스로 책임지며 활동하자.’ 파쿠르의 정신을 다시 마음에 새기며 마무리운동과 함께 이날 수업은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파쿠르의 재미에 푹 빠진 참가자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몰랐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의 파쿠르 맛보기
놀이처럼 재밌는 준비운동에 학생기자들의 얼굴은 웃음꽃으로 환해졌죠. 이제 파쿠르의 기초 동작을 배울 준비가 된 것 같네요. 김 코치는 “기술 이름을 외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지각하면 학교 담을 넘고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듯이 누구든지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게 파쿠르”라고 설명했습니다.
1.시트턴
2.스텝 볼트
3.언더바
4.레일워크
5.점프
6.스윙
<김지호 코치 미니 인터뷰>
김지호 코치는 2004년 영화 '야마카시'를 통해 처음으로 파쿠르를 알게 됐다고 해요. 영화를 보자마자 밖으로 나가 혼자서 파쿠르를 연습했죠. 이후 본격적인 파쿠르 수련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2013년에는 한국에 처음으로 파쿠르 교육을 들여왔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김 코치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봤어요.
(신유림) 파쿠르를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나요.
(김지호) 저는 원래 학교·학원·집만 오가는 우울한 학생이었어요. 교육열이 높은 동네라 체육시간에조차 서로 경쟁해야 했죠. 그런 삶 속에서 나 자신은 없었어요. 내가 원해서 하는 게 단 하나도 없었죠. 그러다 고1 때 영화 '야마카시'를 보고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밖으로 나가 학교 구령대 앞에 섰지만 무서워서 선뜻 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한참 고민하다가 마침내 두려움을 극복하고 동작을 성공했을 때 심장이 뛰는 걸 느꼈어요. 내가 왜 존재하는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 같았죠. 암흑 속 한 줄기 빛 같았어요. 누가 뭐라 해도, 수련이 어려워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때문에 행복해요. 파쿠르의 가장 큰 즐거움은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유림) 안전장치 없이 파쿠르를 하는 이유는 뭔가요.
(김지호) 여러분은 태어나서 처음 걸을 때 기계나 보조 장치가 필요했나요? 그렇지 않았죠. 사람이 태어나면 네발걷기에 이어 걷고 뛰고 달리고 구르고 매달리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익혀요.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엘리베이터나 자동차 등 이동수단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움직임을 잃어버렸죠. 파쿠르는 자연적인 움직임을 회복시키는 활동입니다.
(김지호) 매순간이요. 지금도 파쿠르를 할 때마다 성취감을 느껴요. 흔히 파쿠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죠. 하지만 인간의 모든 활동은 사실 위험을 가지고 있어요. 야생에 사는 동물들을 생각해보면 자연은 본래 위험이 가득하죠. 하지만 위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봐요. 하나는 데인저(danger)예요.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나 자연의 위험 같은 것이죠. 또 다른 하나는 리스크(risk)예요. 우리가 통제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위험을 뜻하죠. 암벽등반을 할 때 로프를 달아 낙상사고를 예방하거나 오토바이를 탈 때 안전교육을 받는 것이 리스크를 통제하기 위한 겁니다. 파쿠르는 위험 감수(risk taking) 활동이에요. ‘위험’은 피할수록 위험하죠.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서의 안전 규제는 날이 갈수록 촘촘해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내 안전사고는 증가하고 있다고 해요. 나의 안전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연습은 자신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죠.
(장희우) 파쿠르를 해선 안 되는 곳이 있나요.
(김지호) 공공장소나 사유지에서 파쿠르를 하면 도둑으로 오해를 받거나 욕을 들으면서 내쫓길 수 있어요. 길거리 행인들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고요. 파쿠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위험하고, 도둑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니까요. 저도 예전에 파쿠르 연습을 하려고 높은 벽을 타고 올라간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경찰서 뒷벽이었어요. 경찰에게 잡혀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주변 시선을 신경 쓰느라 주저하지 말고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파쿠르는 ‘놀이하는 아이’가 되는 길입니다. 누가 뭐라 하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죠.
(장희우) 대중들에게는 어떻게 전파되고 있나요.
(김지호) 유튜브 영상이나 영화를 통해 파쿠르를 알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미디어에 비치는 파쿠르는 빌딩 사이를 뛰어넘거나 아주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등 자극적이고 위험한 모습들이 대부분이죠. 이는 극히 일부분이에요. 파쿠르는 예술이기도 하고 무술이기도 하고 스포츠이기도 하죠. 또 최근에는 파쿠르를 학원에 가서 돈 주고 배워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요. 어떤 수업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죠. 어린이·청소년들이 놀이터에서 뛰놀던 기억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아쉬워요. 파쿠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서로 연대하고 소통하면서 즐겁게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김가영) 파쿠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김지호) 도(道)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길이라는 뜻이죠. 길은 무한하고 자유로워요. 내가 그려나가는 무늬라고 할 수 있죠. 파쿠르의 어원도 길·코스·여정이라는 뜻의 단어거든요. ‘내가 가는 길이 곧 나의 길이다’라는 정신이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파쿠르를 즐기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자발적인 청소년 파쿠르 모임인 ‘모험 움직임 지대’를 만났는데요. 이들은 주 1회 정기적으로 만나 파쿠르를 배우고 연습합니다. 지난 19일에는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숭실대학교에 모였어요. 모임 장소는 매번 바뀌는데요. 페이스북이나 네이버카페에서 ‘모험 움직임 지대’를 검색해 가입하면 공지사항을 받아볼 수 있죠. 청소년 모임을 표방하지만 나이 제한은 없습니다.
현재 이 모임을 리드하는 이민규(16)군은 김지호 코치의 수업을 들은 뒤 파쿠르의 매력에 빠졌다고 해요. 학교 밖 청소년인 이군은 파쿠르를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우선 동호회 형식의 모임부터 시작했죠. “김 코치님의 수업을 같이 들었던 친구들 중에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모임이 커지면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모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유럽에는 꼭 체대가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움직임을 배울 수 있는 학교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게 안타까웠죠. 움직임으로 나를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학교가 생겼으면 해요. 나아가 파쿠르를 통해 자유로운 삶을 살면 좋겠어요.”
수원에서부터 파쿠르를 하러 오는 유재형(경기도 영일초 5)군도 유튜브에서 처음 파쿠르를 접했습니다. ‘부모님이 파쿠르 하는 걸 반대하지 않는지’ 묻자 “아빠는 찬성하는 입장이고 모임 장소에도 데려다주시는데 엄마는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운동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씀하신다”고 귀띔했어요.
이군은 파쿠르를 할 때 중요한 점은 “자신의 상태를 잘 체크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동작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어요.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동작을 하다 보면 다치기 십상이라는 얘기죠. 유군은 “숙련과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반복된 훈련을 통해 기술을 숙련해야 하고, 숙련하더라도 자신감이 없으면 동작을 완성할 수 없다”고 설명했어요. 김군은 “신발이 미끄럽지 않은지, 발 앞꿈치가 잘 구부러지는 신발인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팁을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