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팔뚝으로 피해자 우측 팔뚝 비비고, 왼손으로 피해자 어깨 부위 비벼"
범죄 사실은 "지난해 5월 24일 오전 8시 57분경 경기 부천시 역곡동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자신 앞에 서 있던 피해자에게 바짝 붙어 오른 팔뚝으로 피해자 우측 팔뚝을 비비고 ,왼손으로 피해자 오른쪽 어깨 부위 비비는 등의 방법으로 8분간 피해자를 추행했다"는 내용이다. A씨는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도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성폭력범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이 사건 범행에 이른 점, 피해자가 상당한 고통을 입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해 위 같은 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성폭력특례법 11조에 따르면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돼 있다. 계획적인 범죄보다 우발적·충동적으로 범행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대부분의 사건에서 벌금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된다.
실제로 A씨와 같은 시기인 지난해 11월 선고된 36건의 지하철 추행 1심 재판 중 실형이 선고된 것은 A씨를 포함해 두 건이었다. 17건이 벌금형, 11건이 집행유예, 6건이 선고유예 선고 판결을 받았다. A씨는 사건 자체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으나, 이와 별개로 성추행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실형 선고가 지나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엉덩이 만지고 성기 접촉해도 '집행유예' 대다수
판사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유예하며 "피고인이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 비록 피해자와 연락이 되지 않아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피해자에 대한 사과의 의사를 지속적으로 나타내는 점, 피고인이 범죄 없이 성실하게 살아온 것으로 보이고 현재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또 지난해 11월 30일 선고된 서울북부지법의 한 지하철 추행 피고인 C씨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C씨는 지난해 7월 지하철 1호선의 전동차 안에서 한 여성 피해자 뒤에 서서 피해자의 엉덩이에 자신의 성기를 밀착하고 손으로 피해자의 엉덩이를 만진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당시 판사는 C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성폭력치료강의 수강을 명령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같은 양형 사유는 "피고인이 종전에도 동종 범행으로 벌금형을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재차 이 사건 범행이 이른 점은 불리한 정상"이라면서도 "피해자와 피고인이 합의한 점, 범행을 인정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 등을 감안했다"고 돼 있다.
"양형 기준, 판사별로 달라…국민 신뢰에 악영향"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판사의 양형이 들쑥날쑥한 것은 국민의 법원 판결 신뢰도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며 "사건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면 다 각자 다른 양형 사유가 있겠지만, 그렇다면 최소한 피고인은 물론 국민들이 설득할 수 있도록 그 기준과 이유를 명확하게 판결문에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범한(YK법률사무소) 변호사도 "동종 전과가 있는 재범 피고인들 사이에서는 '어떤 판사에게 가면 선고유예가 나온다' '어떤 판사는 실형이다' 등 판사별로 양형 기준을 꿰고 있을 정도"라며 "법원이 성추행이나 성범죄의 양형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