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명은 정부가 지켜내야 할 가장 고결한 가치이다. 전쟁터에서도 유능한 사령관은 아군 병사의 목숨부터 챙긴다. 면허값 하락의 공포에 떨던 70대 운전기사의 비극 앞에서 최종구가 정부의 대표라면 “고인의 극단적인 선택을 정책으로 미리 막지 못해 송구스럽다. 그렇다 해도 벌써 네 명이나 이어지고 있는 죽음의 행렬만은 안 된다”고 외쳐야 했다. 정작 그 소리는 비즈니스맨이 했고 그 소리를 했다고 정부 장관이 민간인을 면박줬으니 최종구는 도대체 정책 책임자인가 도덕 선생님인가. 요즘 들어 부쩍 문재인 대통령과 그 이하 정부 고위 관료들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문제는 이해 당사자끼리 알아서 해결하라고 방치하는 구경꾼같이 느껴진다.
혁신가 이재웅의 정당한 호소에
최종구는 생뚱맞은 ‘악어의 눈물’
정부에 맞서는 기업인 모습 신통
더 생뚱맞은 건 개인택시 면허문제가 금융위 소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위가 시급하게 할 일은 너무나 많다. 바야흐로 세계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최악의 경제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각 나라가 환율·통화·금융 등 거시경제 관리에 초비상이다. 남대문시장 달러상들은 물건이 동나 아예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시장에 불확실성의 먹구름이 잔뜩 깔렸다. 이런 판에 금융 안정의 주무 장관인 최종구가 오지랖 넓게 다른 부처 일에 참견해 기업인과 말싸움을 하고 있으니 딱하다. 총선을 앞두고 총리·부총리 교체설이 돌자 청와대에 잘 보이려고 오버 액션을 하는 거냐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그건 그렇고 민간의 혁신가들이 정부가 자선사업가 행세나 하는 괴상한 풍조에 맞서 문제해결을 위한 실질적 정책 대안을 쏟아내는 걸 보니 반갑다. 차량 공유의 시대를 연 이재웅은 “신산업으로 피해를 입는 전통 산업은 구제를 해줘야 하고 (…) 신산업 업계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네이버의 공동창업자였던 베어베터 김정호 대표가 자신의 아버지도 택시 운전사였다며 “16조원에 이르는 개인택시업자들의 면허값을 신산업 참여자들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부담하자”는 제안을 했고, 한글과컴퓨터 창업주인 이찬진 포티스 대표도 “타다(이재웅 회사의 공유차량)가 요즘 6500만원 한다는 택시 면허를 사들이면 어떤가”라고 페북글을 올렸다. 이재웅은 정부가 규칙의 틀을 결정하는 것을 전제로 “기업에서 택시 면허를 사는 기본적인 취지는 좋다”고 답변했다. ‘사회적 대타협’같이 겉만 번드르하고 실질이 없는 정부의 공리공론(空理空論)과 비교된다. 자기 수익을 신산업의 피해자를 위해 쓸 수 있다는 한국 혁신가들의 자세는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려운 미덕이다. 무엇보다 근래에 없던 무소불위의 정부 권력 시대에 당당하게 할 소리를 해대는 민간 기업인들의 존재가 여간 신통하지 않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