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로 대표되는 승차 공유 서비스가 택시 등 전통 산업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건 한국뿐이 아니다. 호주에서도 최근 택시 기사와 렌터카 사업자 6000명이 우버가 불법 영업으로 재정적 손해를 끼쳤다며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는 호주 최대 규모의 집단 소송 중 하나다. 한때 최대 90개국에 진출했던 것으로 알려진 우버의 최근 해외 진출 성적표는 60여 개국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만큼 우버 등 모빌리티(이동성) 신사업에 대한 각국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외국은 일단 출범…한국선 시작도 못 해
선출시 후규제 노선
이에 비해 초창기 우버와 리프트에 깐깐한 규제를 적용했던 일리노이주는 2016년에 우버와 리프트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일리노이주는 주당 20시간을 기준으로 20시간 이하로 운행하는 차량에 ‘A 등급’을, 20시간 이상 운행하는 차량에 ‘B등급’을 적용해 운행세 등 세금에서 차등을 뒀다가, 이를 구분하는 제도를 폐지했다.
그랩이 탄생한 말레이시아 정부 역시 초기에 승차 공유 사업을 합법화했다. 그랩은 초창기 한국의 카카오택시처럼 택시 앱(애플리케이션)에서 출발해 개인 차량으로 우버식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확대한 경우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초창기 이런 형태의 영업에 대해 차량이나 기사에 대한 규제를 거의 두지 않았다. 그러다 그랩이 성장한 이후부터 차량과 기사에 대한 요건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랩은 많은 운전자와 운행 가능한 차량을 확보하기 위해 운전 기사의 보험료나 차량 수리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고영경 말레이시아 썬웨이 경영대학 선임연구위원은 “말레이시아 정부는 차량 공유 서비스를 합법화하면서 향후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선언했고, 현재 이를 실행해 나가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택시 기사에게 당근책
핀란드는 지난해 7월부터 승차 공유를 합법화하면서 허가제였던 택시 면허 건수의 총량 규제를 없앴다. 대신 택시 사업자들의 반발을 고려해 택시 요금도 택시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숨통을 틔워줬다. 이런 환경이 조성되자 핀란드에선 출발지에서부터 목적지까지의 모든 교통수단을 끊임없이 연결해 주는 ‘휨’이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구자현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는 승차 공유 논의가 몇 년째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택시 면허권 등에 대한 정확한 통계 자료도 없을뿐더러, 택시 기사들에 대한 보상이나 처우를 높이려는 대안이 부재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교통 로밍'시대 코앞에 닥쳤다
이 때문에 지난해 7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런 바보 같은 나라의 일본”이라고 정부를 향해 직접적인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런 일본 정부도 최근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관광객 유치를 위해 IT를 결합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중국 디디추싱이 일본 현지 택시업체 다이이치와 손잡고 지난해 9월 차량 호출 서비스를 내놓는 등 기존 택시와 결합한 차량 호출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현재 디디추싱 뿐 아니라 우버, 그랩, 인도 올라 등 세계 각국 1위의 승차 공유 서비스 업체에 투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가까운 미래에 전 세계 교통이 하나로 연결되는 ‘소프트뱅크 모빌리티 얼라이언스’가 구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우버를 이용하던 사람이 중국에 가면 디디추싱, 동남아에 가면 그랩, 인도에 가면 올라 등 별도의 앱을 깔 필요 없이 ‘자동 로밍’으로 현지의 교통 수단을 이용하게 되는 시대가 온다는 전망이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승차 공유는 각국이 교통 로밍으로 연결되는 것은 물론, 자율 주행, 드론ㆍ로봇 배송 등 라스트마일 딜리버리(최종 단계의 배송)로까지 이어지는 신사업의 시작점”이라며 “한국이 주춤하는 사이 해외 업체에게 경쟁력을 상실하고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