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 새 각각 국내 맥주 1위, 소주 1위 제품의 출고가 변화다. 술에 매기는 세금, ‘주세(酒稅)’법 개정을 앞두고 주류업계가 발 빠르게 술값을 올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이에 앞서 정부가 술값 인상의 마지막 방패막이로 여겨진 ‘주류가격 명령제’를 올 1월 폐지하면서 술값 ‘기습 인상’의 길을 터준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주류업계 영업 자유 확대” 명분
70년 이어온 제도 올 1월 폐지
“한국 주류시장은 대기업 과점
담합 인상 막게 조사 강화해야”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술은 세율이 높아 과거부터 밀주(密酒)가 많았다”며 “주류 제조를 양성화하고 세금 포탈을 막는 대신 정부가 ‘값은 얼마까지만 받아라’고 통제하는 측면에서 (명령제가) 유지됐다”고 설명했다.
70년 역사를 무너뜨린 건 공정거래위원회가 2017년 12월 ‘하반기 경쟁 제한적 규제 개선 방안’을 통해 주류가격 명령제 폐지를 예고하면서다. 국세청장의 주류 가격 명령 관련 내용을 삭제하는 대신 주류 제조자가 술값을 바꿀 경우 국세청장에게 ‘신고’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주류 가격에 대한 정부 개입 근거를 삭제해 (주류 업계의) 영업 자유를 확대한다”는 명분에서다. 명령제는 공정위 발표 1년여 만인 올 1월 폐지됐다.
하지만 한국의 독특한 술 시장 구조를 고려했을 때 필요한 규제였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품질에 큰 차이 없이 브랜드·가격을 놓고 2~3개 대기업이 ‘과점’한 국내 주류 시장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다. 주류 시장은 업계 1위가 술값을 올리면 경쟁 업체가 일제히 술값을 따라 올리는 등 담합 가능성도 높다. 애주가 인터넷 카페에선 “명령제를 폐지해 좋은 건 과점 대기업뿐”이란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위해 식품으로 분류되는 담배도 사실상 정부가 가격 규제를 한다”며 “술도 단순 기호 식품으로만 볼 수 없기 때문에 가격을 통제 수단으로 쓸 수 있는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령제 폐지가 시대 흐름이라면 적절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대용 소비자시민모임 회장(변호사)은 “규제 완화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국내 주류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시기상조”라며 “명령제를 폐지하더라도 술값 인상에 대한 모니터링과 가격 담합에 대한 조사는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