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강민혜 기자 kang.minhy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덴마크 교육부, 동행취재=박하형(15·일산 가온기독대안학교)·이수경(용인 어정중 1)·홍예린(용인 정평중 2) 학생기자
오디세이학교·주한덴마크대사관에서 들은 ‘학생 의견 존중’의 의미
"덴마크 친구들과 도서실에 앉아서 두 나라의 학교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얘기했다. 처음에는 '와! 정말 다르네'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덴마크 모든 학교는 의무적으로 3시 이내에 끝난다고 했다. 한국의 고등학교는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밤 10시에 끝난다. 덴마크 학생들이 깜짝 놀라 계속 확인했다. 진짜 그렇게 늦게 끝나는지 말이다. 나중에는 구글 번역기를 꺼내 우리 영어가 틀린 건지 의심했다. 솔직히 그럴 만했다. 한 명이 물었다. '그렇게 공부하면 안 죽어요?'"(안혁)
중학교에 다니는 소중 학생기자단의 생각은 어떨까요. "저는 학교 끝나면 바로 학원 가요. 수업 끝나면 저녁 10시예요."(이수경·중1) "저는 초등학교 때 2년간 미얀마 국제학교에 다녔어요. 그 기억 때문에 한국에서 받는 공교육이 소중해요."(홍예린·중2) "저는 주입식 교육이 싫어요. 바르게 자라라고 개입하시는 걸 알지만 너무 엄한 교육들은 힘들어요."(박하형·15·대안학교)
만두쌤 학교 준비할 때는 인생학교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어요. 나의 삶에 대해 시작하는 학교라는 뜻이죠. 그리스 신화에 오디세우스란 영웅이 있어요. 그가 10년간의 방황과 모험 후 고향에 돌아오는 이야기를 쓴 책 『오디세이(Odyssey)』가 있어요. 인생은 오디세우스의 항해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디세이라고 했죠.
수경 덴마크 애프터스콜레를 롤모델로 했다고요.
만두쌤 1년을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죠. 일반적인 학교는 다 똑같은 걸 배우잖아요. 애프터스콜레는 내가 그걸 진짜 좋아하나 확인하러 가는 1년 학교죠. 덴마크 아이들은 한 줄 세우기 당하지 않아요. 그러니 다양한 길이 있죠. 서울시교육청에서 고등학생 대상으로 자기 삶을 돌아보는 학교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삶을 꾸리는 데 밑그림을 그리는 시간으로 1년 살아보는 학교 말이에요. 애프터스콜레가 모델이 됐죠. 자유학년제를 실시하는 중1은 너무 어리고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은 중3은 애매했죠. 그래서 고1 나이인 17살을 대상으로 삼았어요.
수경 다른 학교는 화장·염색 허용 안 되는데 오디세이학교는 어떤가요.
만두쌤 술·담배 금지 말고 다른 규정은 없어요. 나머지 규정은 일주일에 세 시간 정도 하는 자치회의에서 학생들이 직접 다 정해요. 친구들이 느끼는 불편함·불만 등을 말하고 그걸 토대로 같이 지킬 규칙을 만들죠. 대신 서로 공격하거나 지적하지 않아요.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만든 규칙이니 자기들이 지키려고 많이 노력하죠. 규칙 내용은 매년 달라요. 올해 아이들 규칙에 휴대폰에 대한 게 있는데요. 수업시간에 쓰지 않는다, 검색할 때는 쓸 수 있다는 것 등이에요. 선생님이 걷지 않고요.
예린 수업 시간에는 공부도 하나요.
수경 보통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학교 수업 같은 게 있나요.
만두쌤 없어요. 우리 학교 학생들은 서울 각지에서 오니까 평균 등교 시간이 1시간이에요. 오전 9시 30분에 하루열기(조회 개념)을 하고요. 10시에 수업을 시작해 오후 5시까지 해요. 하루닫기 하면 오후 5시 30분이죠. 6시까지 할 때도 있고요. 그러니 방과 후 수업을 하긴 어렵죠. 대신 학생들이 하고 싶을 때 본인들끼리 자율적으로 팀 프로젝트를 꾸리면서 8시, 9시까지 있다가 갈 때도 있는데요. 가끔 있는 일이죠.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하루 딱 2과목 수업해요. 일주일에 10과목이죠. 그러니 강의식으로 절대 못 하죠. 어떤 배움을 하는 데 있어 강의식이 효율적일 수 있지만 자기 힘으로 사는 걸 드러나게 하는 게 목표기 때문에 지식적 차원은 핵심이 아니죠.
하형 오디세이학교에서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 뭐예요.
만두쌤 우리 학교 온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바뀐다는 거죠. 자기 힘이 생기고 쭈뼛대며 살아가지 않는 거예요. 몇 점이라고 수치화할 순 없지만 자기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 어떤 사람의 성향인지 파악하려면 다양한 친구들이 모여 민낯을 드러내야 하죠. 척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니까 가족 같아져요. 무지 잘 싸우게 되는 거죠. 그렇게 다른 기질의 사람들이 모여서 지내다 보면 자기가 어떤 성향인지 파악하죠. 그게 인생을 살아가는 강점이 될 거고요. 스스로를 잘 파악한 것이요.
그렇게 말하지 않을래요. 사람들은 얀테의 법칙을 다른 사람이 겸손하게 하는 데 써요. 오만해지지 말라는 거죠. 이건 목적이 있고 열심히 안 하면 못 이룬다는 거예요. 보통 긍정적으로 안 쓰고요. 다른 사람 야망 없애는 데 쓰이는 말이에요. 물론 동시에 우리 사회가 평등하다는 걸 역설하기는 하죠. 이렇게 하면 긍정적으로 쓸 수 있고요. 부정적으로 쓸 때는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너무 높게 보지 말라고 하는 데 쓰고요.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자랑스러워하는 걸 안 좋아해요. 얀테의 법칙은 그렇게 쓰여 왔고 여자든 남자든 같은 기회를 가진다는 걸 설명하기도 하죠. 또, 정해진 규율이 아니라 그냥 사회의 규율이라서요. 그냥 뭐 말할 때 쓰는 거지 그게 지배적이진 않아요. 그러니 그게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야망을 갖는 걸 방해하는 원인이라고 말할 순 없는 거죠. 누가 어디에서 왔든 똑같은 교육을 받게 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거예요.
맞아요. 갭이어라고 부르죠. 덴마크 나이로는 14살이에요. 한국 나이로는 15살 혹은 16살이겠죠. 초급학교 9학년이 되면 중등학교나 직업학교로 넘어가요. 그 전에 갭이어(gap year)를 갖고 선택하죠. 일하거나 여행하거나, 애프터스콜레에 가서 1년을 보내는 사람도 있죠. 학교의 연장선인데 집을 떠나 혼자 자기를 감당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에요.
-전공을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스스로 뭘 할지 그냥 정하는 거예요. 저는 세 가지 선택이 있었죠. 바로 중등학교를 가거나 중등학교를 갈 준비가 됐는지 생각하며 초급학교서 10학년을 다니는 거죠. 세 번째 선택지가 바로 갭이어예요. 저는 축구를 좋아해서 갭이어에 스포츠를 배울 수 있는 애프터스콜레에 갔어요. 독일어·영어 등 언어도 배웠고요. 이건 개인에 따라 달라요. 전공 개념이 아니고요. 애프터스콜레 가면 스스로 엄청 책임감을 느끼겠죠. 성적을 따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보통 여학생들은 성숙하니 바로 고등학교로 가고요. 저 같은 남학생들은 애프터스콜레로 가는 경우가 많죠(웃음).
-학교 입학을 1년 미루거나 전 학교에서 1년을 더 다니는 선택에 대해 판단하지 않나요.
맞아요. 절대 안 하죠. 일반적인 일이니까요.
저는 스포츠학교였고요. 매일 축구를 했어요. 제 주된 스포츠 종목이었기 때문이죠. 그거 말고도 야구·수영·하이킹 등 관심사에 따라 여러 가지를 했어요. 학급 친구들은 핸드볼도 했고요. 더 나은 스포츠맨이 되는 계기가 됐죠. 기억하기 어렵지만 한 학급에 20~25명이 있었어요. 115명이 전교생이었고요. 우리는 방 청소, 식사 준비, 빨래하기 등도 배웠어요. 주말에 집에 가는 걸 제외하면 보호자로부터 떨어져 자기를 온전히 책임지고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는 거죠.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걸 익히는 거예요. 그게 중요한 거거든요. 애프터스콜레에 대해 더 중요한 건요. 덴마크 교육은 보통 무료예요. 애프터스콜레는 무료가 아니고요. 전 7~8학년에 일주일에 두 번 신문 배달 등의 일로 돈을 벌었어요. 부모님이 '에스케, 가도 되지만 네가 너 자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해'라고 하셨기 때문이죠. 그러니 애프터스콜레는 일반적인 진학과는 결이 좀 다르죠. 부모님도 지원을 좀 해주셨고요. 매우 비싼 게 아니었기 때문에 감당하는 데 힘들진 않았어요.
-한국에도 대안학교라는 제도가 있어요. 하지만 공교육 밖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죠. 두 나라 문화가 다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저는 한국에 1년밖에 안 살아서 제대로 답하기 어렵긴 해요. 하지만 제 생각엔 역사와 관계가 있어요. 애프터스콜레는 1년간 쉬고 자기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 될 수 있죠. 전 스포츠 기자를 꿈꿨기에 스포츠 애프터스콜레를 갔던 거고요. 결국 문화 차이와 역사에서 온 다른 점이죠. 애프터스콜레를 만든 분은 그룬트비예요. 덴마크 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철학자이자 교육가인데요. 평생교육 개념을 만들었죠. 아이들의 감정과 정신적인 성숙도를 돌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역설하고, 어른 위한 교육까지 신경 쓴 분이죠. 삶을 사느라 자기가 어떤 재능을 가진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오페라·음악·그림 등 예술 분야를 접해보지 않아 자기 재능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경쟁률은 있죠. 학교별로 교육과정이 얼마나 좋은지, 뭘 가르치는지 등에 따라 지명도가 다르니까요. 좀 더 세세하게 말하자면 학교별로 인기가 달라진다기보다 뭘 배우는지 영역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생각하시는 것만큼 경쟁률이 세진 않지만 있긴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돼요. 애프터스콜레는 학생의 출신·성적을 보진 않아요. 그저 언제 등록하느냐가 중요하죠.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어요. 한국에선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경쟁이 심하다는 건데요. 학생들에겐 좋은 성적이 그 대상이고요.
저는 지금 처음 들은 말이에요. 어린아이를 평가할 때는 성적 말고도 다른 것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위의 다른 것도 볼 수 있어야 하고 스스로를 파악한 후 도전할 줄도 알아야 하죠. 그저 성적으로만 판가름하기에는 애매합니다. 경쟁이 무조건 싫다고도 할 수 없어요. 아이를 성적으로만 판단하는 것도 안 되고요. 둘 사이에 균형이 필요합니다. 각 나라의 문화에 따라 다를 테고요. 덴마크는 '잘한다'의 기준이 많아요. 재봉사·간호사·운동선수 등 다양한 직업이 있죠. 모두가 의사가 될 필요는 없는 거예요. 또,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 사람, 중간 정도로 성취한 사람, 높은 성취를 이룬 사람 모두를 시스템이 돌볼 수 있어야 해요. 제대로 성취하지 못했다고 등한시하면 사회는 그 사람을 잃을 수 있죠. 주저 없이 다양하게 키울 수 있게 돕는 게 덴마크예요. 당신 자체가 덴마크에 뭘 기여할 수 있는지 여러 방면을 미뤄보아 판단하죠. 그 기준은 대학이 아니고요. 모두가 같은 가치를 추구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나의 기준만 강요하면 재능 있는 많은 사람을 잃어버릴 거예요.
글=강민혜 기자 kang.minhy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덴마크 교육부, 동행취재=박하형(15·일산 가온기독대안학교)·이수경(용인 어정중 1)·홍예린(용인 정평중 2)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