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DJ 등 ‘해피벌룬’ 상습 흡입자 적발

중앙일보

입력 2019.05.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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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34)씨는 2017년 베트남의 한 클럽에서 환각물질인 해피벌룬이 유행하는 것을 본 뒤 '한국에서 유통하면 돈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유통' 등의 이름으로 정식 사업자등록을 하고 휘핑크림 제조 명목으로 해외 아산화질소 수입업체에서 아산화질소 캡슐을 대규모로 수입했다.   

 
김씨가 흡입자를 물색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강남의 유명 클럽 MD(영업사원)나 유흥업소 마담에게 접근해 고객 명단을 받은 것이다. 김씨는 이들에게 "아산화질소를 휘핑크림 제조 외 목적으로 사용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낚시문자'를 발송했다. 이후 문의 전화가 오면 이들을 대상으로 아산화질소를 판매했다. 주로 직접 배달하거나 택시를 이용해 전달하는 방법을 썼다.  

10대도 구입·흡입…혼자 3만캡슐 흡입한 여성도
마약 극대화 효과, 불법화 이후엔 주로 주택가서 유통

김씨는 아산화질소 캡슐(약 8g)을 1개당 약 300원에 수입해 개당 600~800원에 판매했다. 주로 한 번에 100개 단위(8만~10만원)로 팔았다. 수입이 짭짤해지자 김씨는 지인 등 12명을 끌어들여 총 6개의 사업체를 설립해 해피벌룬 유통을 확대했다. 김씨는 이같은 방식으로 지난 2017년 8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총 25억원 규모의 거래를 통해 약 13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이들은 이 돈으로 고급 외제차를 사거나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호화생활을 누렸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강남 일대 주택가에서 해피벌룬을 불법으로 판매한 혐의(화학물질관리법 위반)로 김씨 등 유통업자 12명과 이를 구입해 상습흡입한 83명 등 95명을 검거했다고 17일 밝혔다. 김씨 등 핵심유통업자 3명은 구속됐다. 이는 2017년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으로 아산화질소 흡입이 불법으로 규정된 뒤 최대 규모다.   
 

서울지방경찰청이 강남 주택가에서 25억 규모의 해피벌룬을 유통한 김모(34)씨 일당으로부터 압수한 증거물. 사진=김다영 기자

김씨로부터 아산화질소를 사들인 흡입자 가운데는 강남 최대규모 클럽이었던 ‘아레나’의 DJ 장모(29)씨도 포함돼 있었다. 장씨는 20회에 걸쳐 아산화질소를 구매해 흡입했다. 검거자 가운데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뒤 클럽에서 해피벌룬을 구매해 흡입한 10대도 있었다.


 
또 유흥업소 종사자 박모(24·여)씨는 2018년 1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204회(1990만원 상당)에 걸쳐 아산화질소를 구입했다. 캡슐 수로 따지면 3만2300여개를 혼자 흡입했다. 특히 박씨는 아산화질소 상습흡입으로 인한 순환·호흡계 이상 증상(길랭-바레 증후군)이 나타나 4개월동안 요양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박씨가 경험한 ‘길랭-바레 증후군’은 대표적인 해피벌룬 부작용이다. 중추신경의 마비로 척수가 손상돼 근력이 약해지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진다. 경찰 관계자도 "해피벌룬 상습흡입 조사자 83명 중 4명이 길랭-바레 증후군 관련 진단서를 냈으며,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에 온 20~30대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뒤뚱뒤뚱한 걸음걸이에 어눌한 말투를 보이는 등 해피벌룬이 신경계통에 해악을 미친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2017년 8월 1일 이후 아산화질소가 환각 물질로 규정되면서 흡입 양태가 달라졌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화 이전에는 클럽이나 유흥업소에 가면 해피벌룬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마약과 같이 집에서 몰래 흡입하면서 주택가에 직접 배달해주는 형태로 유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경찰청은 김씨로부터 아산화질소를 구입한 흡입자 약 50여명의 명단을 추가로 확보하고 이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