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다 헛수고였다.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대통령이 오직 자신의 눈으로만 경제를 본다고 생각한다. 다른 눈을 가졌더라도 대통령 눈에 맞추게 한다. 정통 재무관료 출신의 윤종원 씨가 경제수석이 됐을 때, 나는 짐짓 기대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의 눈은 대통령과 같아졌다. 소득주도성장이 옳은 길이라고 주장하고, 최저임금의 과속을 비판하지 않으며, 펀더멘털과 거시경제는 튼튼하다고 말하고 경제 위기론에는 눈을 감았다. 하기야 대통령이 “다른 의견을 많이 내라”고 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어찌 매번 하겠나. 듣지 않으려는 주군에게 목을 걸고 간언하는 신하 따위는 지금 정부에서 기대해선 안 될 일인 것이다. 그러니 모두 대통령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소신에
‘노’라고 말하지 않으면
자신의 영혼마저 빼앗기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가. 스타일이 다를 뿐 본질은 같다. 트럼프가 쉴 새 없이 떠벌이면서 각료와 국민에게 침묵의 동의를 요구한다면, 문 대통령은 듣는 모양새는 갖춘 뒤 ‘답정너’라고 말하는 게 차이일 뿐이다. 대통령의 기·승·전·북한, 적폐청산, 소득주도성장도 그래야 이해가 된다.
취임 2년을 맞은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대통령은 중소·벤처기업인과의 대화(1월 7일), 기업인과의 대화(1월 15일),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2월 7일) 자영업·소상공인과의 대화(2월 14일) 외국인투자 기업인과의 대화(3월 28일) 경제계 원로와의 대화(4월 3일) 사회 원로와의 대화(5월2일)를 잇따라 가졌다. 듣는다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을 동결해달라”고 말하면 대통령은 “길게 보면 인상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업종별·지역별 차등화라도 해달라”면 “보완해 가겠다”며 두루뭉술 넘어갔다. “소득주도성장의 성과가 빈약하다”는 말엔 “경청했다”가 전부였다. 급기야 14일엔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곳곳에서 쏟아지는 위기지표는 아랑곳없다. 그러니 듣기 위한 게 아니라 ‘국민 설득용’ 쇼라는 불만이 나오는 것 아닌가.
2년간 해봤으면 이젠 됐다. 2년 새 한국의 최저임금은 국민 소득(GNI)에 견줘 세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더 오를 곳도 없다. 그런데도 양극화는 심해졌고, 빈곤층의 삶은 더 어려워졌으며, 경제는 뒷걸음치고 일자리는 쪼그라들었다. 잘못된 길이라면 뒤로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 “노”라고 말하지 않는 청와대 경제팀부터 확 바꾸라. 대통령에게 영혼을 먹힌 관료는 기껏해야 확성기 노릇밖에 할 수 없다. 하기야 부질없는 짓이다. 대통령의 머릿속을 바꿀 수 없다면 경제팀을 수없이 바꾼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남은 3년 국민의 영혼마저 먹힐까 암울할 뿐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