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답변을 위해 일어난 문 총장은 “흔들리는 옷을 보는 게 아니라 흔드는 걸 시작하는 부분이 어딘지를 봐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을 장악하려 드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취지의 발언이다.
“검찰, 정권에 휘둘리냐” 질문에
“옷이 아니라 흔드는 곳을 봐야”
105분간 ‘수사권 조정’ 작심발언
“여권안, 기본권 보호에 빈틈 생겨”
20세 때 5·18 직접 겪은 문 총장
“사실은 광주에서 … ” 말하다 울컥
또 “국회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수사권 조정안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걸 전제로 한 법안”이라며 “형사사법 체계의 민주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기본권 보호에 빈틈이 생길 우려가 있다. 일부를 바꿀 게 아니라 큰 틀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무일 “박상기 장관 말대로라면 검찰 입 딱 닫고 있어야”
특히 문 총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최근 검사장들에게 보낸 e메일에 대해서도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e메일 내용대로라면) 검찰은 입 딱 닫고 있어야 한다”며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 아닌가”라며 반박했다. 앞서 13일 박 장관은 검사장들에게 보낸 e메일에 “개인적 경험이나 특정 사건을 일반화시켜선 안 된다”며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팩트, 외국의 제도를 예로 들면서 주장하는 것은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는 의견을 담았다.
박 장관의 e메일에 대해 검찰 내부에선 인사를 앞둔 정부의 ‘검찰 줄 세우기’란 지적도 나온다. 박 장관의 e메일 말미엔 “검사장 여러분, 검찰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신뢰받는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본연의 임무에 더욱 집중하고(중략)… 검사들을 이끌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한 검사장은 “메일 수신 대상을 ‘검사장’으로 한정한 것부터가 문제”라며 “인사를 앞두고 정부에 ‘잘 보여라’는 의미 아니냐”고 꼬집었다.
문 총장은 간담회 말미에 “후배들이 정치적 중립과 수사 공정성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해주겠다는 소망을 마무리짓지 못해 미안하다. 사실은 광주에서…”라고 말한 뒤 감정이 복받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문 총장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 때부터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했고, 그래서 검사가 됐다”며 “그런 이야기를 하려다가 굉장히 울컥했다고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광주광역시 출신인 문 총장은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 벌어졌을 당시 20세 재수생이었다. 대학 진학 직전 광주 민주화운동을 겪은 그는 평소 주변 지인들에게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빚을 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문 총장은 대학생 때도 학생운동을 했다.
한 대검 간부급 검사는 “문 총장이 당시 경험을 통해 공권력이 남용됐을 때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두려운 일인지를 잘 안다”며 “수사기관에 대한 통제가 오히려 반대로 가는 상황에서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기정·정진호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