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박은하 주영 한국대사는 여왕을 만난 자리에서 “왕실 가족을 한국에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2019년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한국을 다녀간 지 20주년 되는 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여왕은 “안동 하회마을에서의 추억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며 안동 방문을 약속했다. 여왕이 약속을 지키면서 왕실을 대표한 앤드루 왕자의 안동행이 성사된 것이다.
14일 여왕 차남 앤드루 왕자 방문
담연재선 어머니 생일상 대신 받고
“안동서 살면 1000년 사냐” 농담
신발 벗고 봉정사 법당 들어가기도
그는 어머니가 다녀간 하회마을로 곧장 향했다. 서애 류성룡(1542~1607) 종택인 충효당을 먼저 찾았다. 충효당엔 영국 여왕과 관련한 일화가 있다. 20년 전 여왕은 충효당에 오르면서 신발을 벗고 올랐다. 서양에선 발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어 당시 외신 기자들이 여왕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했다는 이야기다.
앤드루 왕자는 충효당 마당에 심어 놓은 구상나무를 한동안 살펴봤다. 여왕이 20년 전 심고 간 나무다. 그는 구상나무 옆에 세워진 ‘로열 웨이’ 표지판에도 눈길을 줬다. 로열 웨이(Royal Way)는 여왕이 하회마을과 농산물도매시장, 봉정사를 돌아보며 지나간 길(32㎞)에 붙여진 이름이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한지 두 세트와 그릇인 수반을 기념 선물로 전달했다. 한지를 선물하며 권 시장이 “1000년 전통을 이어온 한지”라고 소개하자 왕자는 “안동에서 살면 1000년을 살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 웃음을 자아냈다.
왕자는 학록정사로 옮겨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를 관람하고, 여왕 사진 등이 전시된 행산고택과 하중재 등을 돌아봤다. 그는 20년 전 여왕이 들렀던 안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도매시장에서 사과를 선물 받은 그는 “귀국하면 어머니에게 사과를 꼭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왕자는 봉정사를 찾아 20년 전 여왕이 한 것처럼 범종을 타종하고 돌탑까지 쌓은 뒤 대웅전을 돌아봤다. 여왕이 그랬던 것처럼 법당에 오를 때 신발을 벗어 눈길을 끌었다. 봉정사 측은 ‘대영제국’을 주제로 한 사행시 족자를 선물했다. 또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세계기록유산 퇴계집 책판인 장판각을 챙겨보고, 왕의 열 가지 도리를 적은 ‘성학십도(聖學十圖)’ 책자를 선물 받는 것으로 안동행을 마무리했다.
안동=김윤호·김정석 기자 youknow@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