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해협 유조선 피습…트럼프 B-52 띄워 이란에 경고

중앙일보

입력 2019.05.1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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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 연안 해역에서 공격을 받은 노르웨이 국적의 유조선 MT 안드레아 빅토리호의 아랫부분이 13일(현지시간) 훼손돼 있다. [AP=연합뉴스]

이란 핵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말(言) 대 말에서 군사적 대치로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5월 미국이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하고 대 이란 외교·경제 압박을 지속하자 이란이 우라늄 고농축 재개 위협으로 맞서면서 빚어지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연안 해역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선박 등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의 공격을 받은 데 대해 “무슨 짓을 하든 크게 고통받을 것”이라며 “이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 그들이 무슨 짓을 하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한 이 언급을 두고 로이터통신 등은 이번 공격을 이란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여차하면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고 해석했다.

UAE 연안서 선박 4척 공격받아
미국 수출용 사우디 유조선 포함
트럼프 “이란 무슨 짓 하든 큰 실수”
이란은 “우리가 안 했다” 부인

미 공군은 12일 카타르 공군기지에서 이륙하고 있는 B-52 전략폭격기의 사진을 잇따라 공개했다. 하루 뒤 미 공군 대변인은 ’이들 폭격기가 중동 지역에서 억제 임무를 수행하는 비행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지난 12일 중동의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인근 UAE 동부 영해에서 사우디 유조선 등 4척의 선박이 ‘사보타주’(의도적인 파괴행위) 공격을 받았다.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인명 피해나 원유 유출 등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선체가 큰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노르웨이 국적 선박, UAE 선박도 비슷한 피해를 봤다.
 
영국 가디언은 “공격받은 유조선 중 하나는 미국으로 수출될 석유를 싣기 위해 사우디 항구로 향하고 있었다. 이란은 강하게 부인했지만, 이처럼 수송을 중단하려는 건 (미국이) 이란의 (원유) 수출을 마비시키는 데 대한 보복행위와 일치한다”고 썼다. AP통신은 이날 미 관료를 인용해 이란이나 이란의 지원을 받는 세력이 배에 구멍을 내기 위해 폭발물을 사용했다는 게 미군의 초기 평가라고 보도했다. 각각의 배에는 5~10피트(약 1.5~3m)의 구멍이 났다고 한다.
 

미 공군은 중동 인근 상공에서 공중급유 중인 F-35A 스텔스기의 사진을 잇따라 공개했다. 하루 뒤 미 공군 대변인은 ’이들 폭격기가 중동 지역에서 억제 임무를 수행하는 비행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이 지난 9일 이란이 미군을 공격하거나 핵무기 개발에 속도를 낼 경우 최대 12만 명(2003년 이라크전 파병 수준)의 병력을 중동 지역에 파견하는 계획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고위 관리들에게 제시했다고 전했다. 배치에 최소 수 주 이상 걸리는 군사계획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긴급명령에 따라 지난 8일 미 루이지애나주 박스데일 공군기지에서 카타르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로 배치된 B-52 4대는 초계비행을 시작했다. 13일 미 공군 중부사령부 대변인은 “B-52가 페르시아만을 포함한 중동 지역에서 억제 임무를 수행하는 비행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중부사령부는 중동 지역을 관할하는 미군부대다. B-52는 핵공격을 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다.


CNN은 이미 이곳에 배치된 F-15 전투기 편대와 F-35A 전투기 편대가 B-52의 초계비행을 엄호했다고 보도했다. 여차하면 스텔스 전투기도 공습에 동원할 수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미국은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함(CVN 72)도 페르시아만으로 보냈고, 대형 수송함 알링턴함(LPD 24)과 지대공 요격미사일인 패트리엇 포대도 보냈다. 당장 지상전을 벌일 수 있는 규모와 단계는 아니지만 여차하면 공습할 수 있다는 경고장을 이란에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만나 “사소한 사고로 전쟁이 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다른 편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두가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냉각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철재·황수연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