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총장은 해외출장 중이던 지난 1일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수사권 조정 법안과 공수처 신설 법안을 두고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고 말했다. 이어 4일엔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빈틈이 생겨선 안 된다”며 재차 부정적인 입장을 냈다.
문 총장과 사법연수원 동기(18기)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87년 항쟁 등을 회상하며 “문 총장은 독재정권 타도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2차 사법파동의 주역이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기기도 했다. 2차 사법파동은 1988년 2월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한 뒤 제5공화국에서 중용된 김용철 대법원장을 재임명하자 소장 판사 335명이 반대 성명을 발표한 사건이다. 당시 사법연수원생이던 문 총장은 사법부 개혁 움직임에 동참하는 서명 운동에 앞장섰다는 게 이 지사의 회고다.
이렇게 개혁 성향을 인정했던 당과 청와대이기에 문 총장과의 대결 구도는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가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것도 대체로 그런 맥락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만큼 최대 330일이 지나면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는 타임 스케줄도 염두에 둔 대응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검찰 개혁 법안을 실은 패스트트랙 열차는 이미 출발했다”며 “열차를 멈추게 할 방법은 없다. 검찰을 잘 다독이면서 도착지까지 가면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문 총장의 파면을 촉구하는 글이 5개 이상 올려와 있다. 청원 인원은 1만명을 넘었다. 검찰은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공식 입장과 자세한 설명에 나설 방침이다. 그러나 검찰과 여권의 여론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 총장은 지난 4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조만간 상세히 말씀드릴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당의 장외 투쟁으로 검찰 관련 법안을 다루는 국회 사법개혁특위는 개점휴업 상태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이번 주에 이상민 위원장과 민주당 사개특위 위원들의 회동이 있을 것”이라며 “검찰 측 입장을 정리한 의견서도 7일쯤 국회로 송부된다고 하니 이를 받아본 후 회의 개의 여부를 정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