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직 외국인 노동자는 노! 일본의 새 이민 전략

중앙일보

입력 2019.05.0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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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형종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배운다(25) 

전 일본 내각총리대신 故 오부치 게이조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모습. [중앙포토]

 
2000년 오부치 케이조(小渕恵三) 총리는 장래 일본의 인구감소를 예상했다. 그는 장래 비전을 제시한 ‘21세기 일본의 구상’에서 인구감소 대책으로서 이민정책을 언급했다.
 
“글로벌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국가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외국인이 일본에서 쾌적하게 생활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외국인이 일본에 살면서 일하도록 하는 이민정책을 세우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이 모이면 일본의 지적 창조력이 향상되고,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제경쟁력도 높아진다.”
 
상당히 앞선 생각이었다. 장래에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일본사회를 구상하고, 장래 이민정책의 추진을 언급했다. 이렇게 2000년 초반에 외국인력 수용에 대한 이념과 기본방향이 제시됐지만 국민적 합의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2008년부터 인구가 줄어들자 외국인 수용문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장래 심각한 노동력 인구 부족이 예상되는 현실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일본 정부는 올해 4월부터 임시처방책으로 앞으로 5년간 약 35만명의 단순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속내는 다르다. 단순 외국인 노동자보다 우수한 외국 인재의 수용에 공을 들이고 있다. 1999년에 고용대책 기본계획에 이미 전문분야의 외국 인재를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정했다. 인구감소와 글로벌화에 대응해 수준 높은 기술과 지식을 가진 외국 인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인력 부족을 해소하고, 혁신을 통해 높은 생산성을 올리겠다는 포석이었다.
 
하지만 약 20년이 지나도 우수한 외국 인재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다시 ‘미래투자전략 2017’에서 2022년까지 2만명의 우수한 외국인력을 활용한다는 정책을 제시했다. 제4차 산업혁명과 글로벌 사회에서 전문기술과 지식을 가진 우수한 외국인력이 기업발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손부족으로 24시간 영업 방침 수정을 요구하는 일본 편의점 가맹점 점주들이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전문분야에 종사한다고 해서 모든 외국인을 인재로 간주하지 않는다. 우수한 외국 인재란 일본의 자본·노동을 보완하고, 대체할 수 업는 수준 높은 인재이고, 산업에 혁신을 일으키고, 일본인과 함께 일하며 전문분야의 노동시장 발전과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인재라고 일본 정부는 정의하고 있다.
 
일본 기업도 우수한 외국인력을 채용하기 어렵지만, 외국인력의 채용은 많은 장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먼저, 최근 치열한 글로벌 경쟁환경에서 글로벌 시장정보와 사업경쟁력을 발휘하려면 우수한 외국인력이 필요하다. 수준 높은 연구력과 기술력, 기획력과 영업력, 경영관리 등 전문능력을 가진 탁월한 외국 인재가 필요하다. 글로벌 기업은 일찍부터 국적을 불문하고 우수한 외국 인재를 활용해 세계시장을 겨냥했다.
 
둘째,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우수한 외국 인재를 활용하면 글로벌 경쟁에 대비한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각국의 연구개발 경쟁이 치열한 IT 기술 분야에서는 글로벌인재를 뽑는 것이 관건이다. 이질적인 외국인을 활용하면 기존의 고정된 스타일을 파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폭제가 된다.
 
외국인 노동자는 모국보다도 외국에서 일할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도전정신이 왕성한 인재가 많다. 장래 명확한 커리어 목표를 가진 사람도 많다. 이러한 외국 인재는 지명도가 높은 회사를 선택하지 않고, 직무성과로 경쟁하는 경향이 있다.
 
또 국내 인력과 다양한 외국 인재가 교류하면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발상이 나온다. 업무 능력이 뛰어난 외국 인재가 있으면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고, 회사 전체가 활성화된다. 회사직원에게 다양성과 글로벌 경영마인드를 자극하고, 혁신적인 사고를 갖게 한다. 실제로 외국 인재 활용이 회사의 다양성과 혁신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자료 후생노동성, 제작 조혜미]

 
일본 정부는 우수한 외국 인재가 정착하도록 2012년에 ‘인재 포인트제도’를 만들었다. 외국 인재의 학력, 경력, 연봉 등 항목별로 포인트를 정해두고 70점이 되면 출입국 관리상 우대조치를 하는 제도이다.
 
2015년에는 인재를 위한 특별재류 자격 ‘인재 전문직’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우수 전문직 1호의 재류 기간은 5년이고, 2호는 재류 기간 무제한의 우대조치를 받을 수 있다. 인재로 인정되면 배우자의 취업, 어린 자녀를 돌봐주는 목적으로 부모를 일본에 불러올 수도 있다. 이러한 인재는 반드시 최고급 인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대학 석사, 경력 10년, 연봉 700만엔의 조건에 해당한다. 그렇게 기준이 높지 않아 많은 사람이 신청할 것 같지만, 우수 전문직의 재류 자격 취득자 수는 아직 적다. 2012년부터 우수 외국 인재 인정 건수 4년간 약 20배가 늘었다. 2016년 말 인재는 6669명으로 1만명 목표에는 미달상태다. 인구감소를 보충하는데 거의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그만큼 일본 기업의 취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인재가 많기 때문이다.
 

[자료 일본 법무성, 제작 조혜미]

 
무엇보다 글로벌 기업 수준의 인사관리시스템을 갖추고 커리어 개발을 지원해야 일본기업에 우수한 외국 인재가 정착할 가능성이 있다. 유럽과 미국의 글로벌 기업은 일찍부터 글로벌 경영에 필요한 인재 채용을 비롯해 인재육성과 커리어 개발, 평가 등 세계통일의 인사제도를 구축했다. 직무에 적합한 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연령, 근속연수, 국적, 성별과 관계없이 인재를 평가하는 세계공통의 인사평가제도를 운용한다. 성과를 보수와 승진 등의 처우에 직접 반영하는 철저한 성과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예를 들면, IBM은 전 세계 전 직종 공통의 스킬, 능력, 직무에 따라 일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사관리 시스템을 갖춰 부문과 경계를 넘은 인재이동과 배치, 평가, 처우를 통합 관리하고 있다. 인사관리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유능한 관리직도 필요하다. 유능한 관리직이 없다면 우수한 외국 인재를 고용해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또 외국 인재는 일본인만큼 사업현장에서 통용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춰야 한다. 아무리 특출한 능력은 있어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없다면 일본기업은 채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해결하려고 후생노동성은 2011년 우수한 외국 인재를 활용하기 위한 실천매뉴얼을 제작했다. 외국 인재에게 필요한 사내 커뮤니케이션 능력, 고객·협력회사와 협상 능력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채용 후에 외국 인재가 정착하고 활약할 수 있는 대책도 필요하다. 외국 인재를 채용한 일부 기업은 어학 능력과 전문성을 살린 부서배치와 육성, 상담체제를 갖추고 있다. 외국 인재의 가족들이 일본에서 편하게 생활하는 환경도 매우 중요하다. 일본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 운영, 일본어 교육, 국제수준의 교육기관, 다양한 언어로 대응하는 의료기관, 행정서비스도 갖춰야 한다.
 
일본의 다양한 중견·중소기업에서 외국 인재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은 아직 취약하다. 그러나 외국 인재가 활기차게 일하는 기업환경을 구축해 성과를 올린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혼다 기공은 외국 인재를 활용한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일본 후쿠오카에 위치한 혼다 기공 본사. 혼다 기공은 외국 인재를 활용한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사진 구글지도 화면캡쳐]

 
이 회사의 경영층은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고 먼저 회사의 직원들에게 글로벌 의식을 침투시켜 외국인 노동자 채용을 준비했다. 외국인 유학생 등을 대상으로 회사설명회를 통해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채용했다. 일본이 직원에게 영어교실을 개최해 외국인과 일본인 직원의 이해를 넓혀나갔다. 외국인 직원이 모국에서 독립을 희망할 경우 적극적으로 지원하거나 독립 후에도 현지 파트너로서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카시오 계산기㈜는 외국인 노동자가 모국에 돌아갈 경우 장기휴가를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 직원의 종교를 배려하고, 식당의 식품 재료도 명시하는 등 다문화 공생환경을 만들고 있다. 외국인이 일본어를 배우도록 지원하여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대책도 추진했다.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편의점 업계도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대형 편의점은 신입직원 채용의 10%를 외국인 유학생으로 설정했다. 유학생은 일본에 흥미를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일본 문화를 배우고자 의욕적인 사람이 많다. 또 다른 편의점은 외국인 노동자 연수를 본부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종업원과 가맹점주도 연수에 참여하여 외국인 육성 노하우를 효과적으로 익히게 되었다.
 
지금 일본기업은 인구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 글로벌 경쟁의 파고에 휩싸여 있다. 외국인을 포함한 다양한 인재를 활용하여 생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글로벌 인재를 활용하기 위한 기업 내부의 의식개혁과 혁신전략이 필요하다. 글로벌 관점에서 다양성 경영을 펼치는 일본기업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형종 한국금융교육원 생애설계연구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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