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극장장은 한국 연극의 거목, 임영웅 연출가의 맏딸이다. 임 연출가는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 성공 이후 극단 산울림을 창단했고, 1985년 전용극장 격으로 서울 서교동에 산울림소극장을 마련했다. 공연 때마다 대관 장소를 찾아 떠도는 데 지쳐 살던 집을 팔아 지은 극장이었다. 부인인 번역가 오증자 전 서울여대 교수의 인세 수입까지 모조리 쏟아부었다.
이렇게 문화계의 가족 경영은 존속을 위한 최후 수단인 경우가 많다. 1976년 창간된 무용 평론 월간지 ‘춤’ 역시 산울림소극장과 꼭 닮은꼴로 운영되고 있다. 창업자 조동화 선생이 2014년 작고한 이후 ‘춤’의 발행인과 주간을 아들 조유현 늘봄 출판사 대표 부부가 맡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며느리 조은경 주간은 최저 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잡지를 만든다. 아들 조 발행인은 아예 월급이 없다.
산울림소극장과 ‘춤’ 모두 우리나라 연극사·무용사에 한 획을 그은 존재지만, 이들의 지속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태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설립자의 능력 있고 효성 깊은 자식들의 사명감에 기대 이어져 왔지만, 이후의 존폐 여부는 누구도 장담 못 한다.
산울림소극장을 두고 유민영 서울예대 석좌교수는 “현대문화재로 지정해 국가 차원에서 보존·관리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우리 사회 공공재인 문화 자산의 운명을 어느 개인의 자식 농사 성공 여부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는 말이다. ‘생존형 패밀리 비즈니스’ 차원을 뛰어넘는 대안은 없을까. 문화계와 정부·지자체·기업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 고민해볼 일이다.
이지영 문화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