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달라지는 경조사비
직장인 박모(37)씨는 지난해 검소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양가 부모와 신랑·신부의 절친 두세 명씩만 초대했다. 축의금은 받지 않았다. 박씨도 10년 전부터 경조사에 거의 안 갔고, 돈도 안 낸다. 박씨는 “경조사를 지나치게 챙기는 것은 돈 낭비, 시간 낭비다.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아니냐”고 잘라 말했다.
“서먹서먹해져도 개의치 않는다”
품앗이 의식 없는 요즘 젊은이
친구·친인척에게도 “10만원 이하”
“옆 부서 선배 결혼식에도 안 가”
“각자도생 세대, 만혼·비혼도 영향”
2030 복세편살 … “직장생활 10년, 결혼식 딱 두 번 갔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김모(28·여·서울 마포구)씨는 웬만한 경조사엔 참석하지 않는다. 올해 들어 딱 두 번 갔는데 모두 친척 장례식이었다. 부의금으로는 3만원씩 냈다.
그는 “결혼식은 거의 가지 않는다”면서 “우선 결혼 계획이 없고, 축하하는 마음 없이 기계적으로 돈만 내는 건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인의 장례식엔 추모하는 마음에서 참석하지만 부의금을 많이 내는 건 부담스럽다”고 했다.
직업군인인 그의 아버지는 달랐다. 지인들과 함께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일찍부터 모바일 청첩장을 공유했다. 김씨는 “아버지는 반응이 없는 회원에겐 개인 톡으로 연락했다”며 “부조금을 낸 만큼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인 듯했다. 내 생각이 있지만 그렇다고 (아버지 방식을) 부정하지도,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3년 차 직장인 권소영(26·여)씨 역시 “청첩장을 주고받는 게 축하해 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축의금이 오가는 과정으로 보일 때가 많다”며 “별로 가깝지도, 자주 연락하지도 않는 사이인데 청첩장을 내밀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일부선 “사람 얻는 방법” 적극 부조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1980~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끈끈한 연대보다 각자도생을 먼저 경험한 세대”라며 “경조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연대를 재확인하는 성격이 짙은데 그것이 사라졌음을 반영한다”고 풀이했다.
김 교수는 “2030은 스스로 살기 위해 ‘나’를 믿는 세대다. 본인의 필요 여부를 꼼꼼히 따진다. 이걸 뭐라고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근홍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30은 부조금을 뿌려도 돌려받지 못하거나 돌려받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는 최근의 만혼·비혼 풍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중앙일보는 지난 15~17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시민 7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경조사 참석에 부담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59.5%가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조금 43.2%, 많이 16.2%). 60대 11명 중 8명(72.7%)이 부담을 호소했다. 다음으로 40대, 20대 순이다. 남자(56.7%)보다 여자(61.4%)가 부담을 느끼는 비율이 높다.
이유는 조금씩 달랐다. 2030세대는 ‘시간을 빼앗기고 장소가 멀기 때문’(47.2%)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경조사비와 교통비가 부담돼서’(36.1%)였다. 50대 이상은 비용 부담(47.8%)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설문에 응한 74명 중 25명(33.8%)이 가장 부담스러운 경조사로 환갑을, 22명이 돌잔치를 꼽았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정모(42) 부장은 “청첩장·돌잔치 소식과 부고가 ‘세금 고지서’ 같다. 5월에 반드시 가야 할 결혼식·돌잔치가 4개”라며 “우리 애 돌 때 7만~8만원이던 한 돈(3.75g)짜리 금반지가 지금은 20만원이다. 5월이 괴롭다”고 말했다.
이상재·김태호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https://www.joongang.co.kr/Digitalspecial/356)에 접속하면 본인 경조사비를 타인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