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글자도 명확하게 보여요. VISION! 맞죠?”
12일(현지시간) 서아프리카 감비아 수도 반줄에서 35㎞ 떨어진 도시 브리카마에 위치한 브리카마 병원. 이틀 전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 검사를 마치고 나온 셀라 자타(78)가 자원봉사자의 옷에 적힌 파란색 글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 말이다. 그는 “양쪽 눈이 다 뿌옇게 보여 넘어지기도 했지만 이젠 글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른쪽 눈에 보호대를 착용한 자타는 “갓 블레스 유”를 외치며 웃는 얼굴로 병원을 나섰다.
뒤이어 검사실에서 나온 마시파 부(28)는 “아예 한쪽 눈을 잃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력을 되찾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왼쪽 눈 시야가 흐려져 병원을 찾았지만 백내장이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며 “당시 병원에선 안경을 맞추라고 했다”고 했다. 하지만 안경을 써도 소용은 없었다. 지난해 11월부터 빛과 어둠만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악화됐다. 다시 병원을 찾아 백내장 진단을 받긴 했지만 안약만 처방받았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안약은 가려움증을 덜어주는 항염증제에 불과했다.
서아프리카 소국 감비아, 안과의사 세명 뿐
15분 수술 기회 못 얻어 20대도 시력잃어
3대·자매가 함께 한국의료진 만나러 오기도
실명구호단체 비전케어, 83명에 새 시력 선물
감비아 안과의사는 단 3명, 라디오 광고 듣고 환자 몰려
인구 220여만명의 감비아엔 의과대학이 한 곳, 안과의사는 세 명뿐이라 전문적인 진료를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국제실명구호단체 비전케어가 진행한 300차 비전아이캠프를 통해 감비아의 백내장 환자 83명이 새로운 시력을 선물받았다. 한국·미국·에티오피아에서 온 안과전문의 2명, 마취과전문의 1명, 간호사 4명, 자원봉사자 3명, 간사 1명이 한팀을 이뤄 390명을 진료하고 이중 백내장 수술이 필요한 이들을 치료했다.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기회인만큼 가족이 함께 수술을 받는 사례도 있었다. 앤 사조(43)는 “난 10일에 수술을 받고 70대 어머니 순투 바기는 그 다음날 수술을 받았다”며 “열 여섯살 딸도 혹시 백내장인지 검사하려고 데려왔다”고 말했다. 11일 병원을 방문한 스케바 만장(50)은 “언니 네이 만장의 보호자로 따라온 김에 검사를 받았는데 얼떨결에 백내장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고 했다.
‘피할 수 있는 실명’…10살 어린이도 백내장 수술로 시력 되찾아
버지니아에서 온 마취과전문의 이숭규(47)씨는 “비전케어의 손이 닿지 않았으면 60~70년동안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았을 어린 환자를 치료할 때 특히 더 보람차다”고 했다.
감비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방의학과 전문의 가보우 멘티(75)는 “감비아에 가장 필요한건 의학 장비와 의료기술”이라며 “해외 전문의들의 봉사뿐 아니라 현지 의사들을 위한 트레이닝 코스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전으로 수술 중단되기도…38도 더위에도 8시간 넘게 수술
38도를 웃도는 날씨였지만 의료진은 더 많은 환자를 수술하기 위해 점심식사도 현지전통 빵 타팔라파로 대체하고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반까지 수술을 이어갔다. 캠프 삼일째엔 하루에만 수술을 30건 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한국에선 아무리 많아도 수술을 10건 이상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의료팀의 노력덕분에 감비아 환자들은 웃음을 되찾았다. 병원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인 도시 셀라쿤다에서 온 장고 샤오(55)는 “3개월 전부터 오른쪽 눈이 어둡게 보여 동네 병원에 갔지만 안약만 처방받았다”며 “수술받아 기쁘고 가족들도 너무 좋아한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브리카마(감비아)=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김동해 이사장 인터뷰] "2002년 시작한 봉사활동이 어느덧 300차"
김 이사장은 “비전아이캠프가 300차를 맞아 그저 감개무량하다. 익명의 후원자, 자원봉사자들이 아니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며 소감을 전했다. 그는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친 덕분에 노하우가 쌓여 열악한 환경에서도 능숙하게 환자들을 수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술 장비가 들어있는 수화물이 분실되는 일도 잦았고, 9년 전 66차 캠프로 감비아를 처음 찾았을 때는 발전기가 과열돼 수술 장비가 타버리기도 했다.
그는 “흔히 아프리카 질병하면 에이즈, 말라리아 등 생사와 직결된 병만 떠올리지만 봉사활동을 다니다보면 한국은 물론이고 교과서에서조차 보기 힘들 정도로 눈 상태가 심각한 환자가 많다”며 의료환경이 열악한 국가들의 상황을 전했다. 김 원장이 원하는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현지 의료진에게 기술을 전수해 지속가능한 의료를 가능하게 하는게 그의 꿈이다. 이번 캠프엔 에티오피아 현지 의료진 역량 강화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간호사 메자 트세게이와 테라페 무루쉐도 함께했고 반줄간호학교 학생 7명, 감비아에서 연수를 받고있는 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 의사도 김 원장의 수술을 참관했다.
김 이사장은 “현지의료진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동시에 나는 그들에게 현지상황을 배운다”며 “언제까지 봉사활동을 계속할진 모르겠지만 비전케어가 아프리카, 중동 그 어디든 안가도 되는 그날이 오는게 내 소원”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