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과 선거제 개편안에 대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놓고 벌어진 당 내분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출범 때부터 단일 대오가 아니라 느슨한 계파연합이란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진보의 대립이 격렬해지자 당의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모래알처럼 무너지는 상황이다.
색깔 다른 세 정파 파국 치달아
패스트트랙 표결도 다른 목소리
안철수 상황 관측, 호남계 신당론
“50억 당 자금 분당 막는 요인”
서로 ‘네가 떠나라’ 밀어내는 형국
호남계와 바른정당계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면서 패스트트랙 추진 과정에선 안철수계도 쪼개졌다. 패스트트랙 추인을 결정하기 위해 23일 열린 의원총회 표결에서 안철수계 채이배·김삼화·김수민 의원 등은 찬성 측에 섰지만, 또 다른 안철수계인 이태규·김중로 의원 등은 반대 측에 섰다. 안철수 전 대표가 국내에 자리를 오래 비우면서 안철수계 의원들은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결국 민주당과 손잡고 패스트트랙을 가동하기로 결심했고, 이는 사개특위에서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는 오신환 의원을 사·보임시키는 초강수로 이어졌다. 반면 과거 드루킹 특검법안은 바른미래당이 한국당과 손잡고 민주당을 압박해 관철시킨 경우다. 대규모 정계개편이 벌어지지 않는 한 20대 국회에선 이처럼 중간지대 정당이 계속 키를 쥐는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③3인의 거취 어떻게 될까=패스트트랙의 후폭풍은 유승민·안철수·손학규 3인의 거취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유승민 의원은 23일 의총 직후 바른정당계 의원들을 모아 여의도 한 식당에서 당의 진로를 논의했다. 바른정당계 지상욱 의원은 “당장 단체행동은 없다”면서도 “오신환 의원에 대한 사·보임 강행 시도는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과 유의동 원내수석부대표도 이날 오후 사·보임 강행의 부당함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조직적인 대응에 나섰다.
안철수계의 혼란상에도 불구하고 안 전 대표는 당분간 독일 유학을 지속한다는 입장이다. 이태규 의원은 “지난 주말 안 전 대표와 통화했다”며 “조기 귀국보다는 현지에서 예정된 일정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안 전 대표 측은 “지금 원외인 안 전 대표가 돌아온다고 해서 패스트트랙 정국을 안정시킬 뾰족한 수가 없다. 자칫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손학규 대표도 큰 상처를 입었다. 당내 갈등에서 전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며 원외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손 대표에 대한 호남계의 지지는 여전하지만, 손 대표 거취를 둘러싸고 호남계 VS. 바른정당계+일부 안철수계의 당권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바른정당계보다는 호남계의 정치적 공간이 상대적으로 넓다. 박지원 민평당 의원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손 대표가 바른미래당의 비례대표 의원들을 제명해 주고 의원들이 지역별로 갈라서면 (호남계가) 평화당과 교섭단체를 꾸려 호남에서 대안 세력을 만들 수 있다”며 구애 의지를 확실히 밝혔다. 반면 한국당 측에선 바른정당계를 끌어안는 데 대해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다. 한국당의 한 당직자는 “친박계를 중심으로 유승민 의원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강하다”고 말했다.
돈 문제도 현실적 요인이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내년 총선을 대비해 현재 50억원가량의 자금이 마련돼 있다”며 “제3당으로선 결코 적은 돈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당을 사수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운·성지원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