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패스트트랙에 합의한 후인 22일 저녁 민주당 의원(128명) 단체 카톡 방에 글을 올렸다. 협상 결과와 그간의 고뇌 등이 담긴 글은 민주당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명분에 집착하다 실리를 놓친 참여정부 때의 예를 들었다. 다음은 카톡 주요 내용.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경우 민주당은 공수처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부여해야 한다는 원칙론이 대세였다. 청와대와 법무부의 입장도 같았다. 이 때문에 협상 파트너인 바른미래당에서 공수처에 기소권은 줄 수 없다고 했을 때 민주당 내 반발이 컸다. 홍 원내대표는 이에 대한 미안함도 나타냈다.
“오롯이 우리 당의 원안을 관철시키지 못해 송구합니다만, 여러 단위와 수많은 협의를 거치면서 많은 분들이 그 무엇보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드는 시점을 넘기면 관련 법안 처리가 요원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5년 전 노무현 정부 시절 흐지부지됐던 국가보안법 개정 실패 사례를 언급하며 이해를 구했다.
국가보안법은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직접 폐지 의사를 언급하면서 여야가 첨예하게 부딪힌 이슈였다. 과반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세게 밀어붙이자 야당인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도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ㆍ고무 등)’에 대해서는 개정 의견을 밝혔다.
당시 열린우리당 152석 중에 108명은 초선이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개정은 안 되고 폐지만이 옳다는 주장이 나왔고 결국 야당과의 대치 끝에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했다. 이른바 ‘108번뇌’라는 것이다. 이후 열린우리당은 재집권하지 못했고 당은 분열됐다. 이 일은 민주진영의 상처로 남아있다.
그때를 기억하는 민주당 중진 의원들은 당시 실패를 교훈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3선의 노웅래 의원은 “당시에 아무것도 못 한 것 아닌가. 그때 개정이라도 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아졌을 것”이라고 했다.
홍 원내대표는 카톡 말미에 “힘으로 마음대로 칼을 휘두르는 혁명보다 설득과 타협을 통해 풀어가야 하는 개혁이 더 어렵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며 “다소 부족하지만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것이 더 절실하다는 심정을 의원님들이 충분히 헤아려 줄 것으로 믿는다”고 썼다.
민주당 일각에선 이번 합의안을 문재인 대통령의 경험칙과 연관지어 분석하기도 한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달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에서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이) 칼로 물 벤 것처럼 되면 안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인 공수처 신설 등을 패스트트랙까지 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와 관련한 바른미래당의 내홍도 심상치가 않기 때문이다. 또 민주당 내부에서도 경우에 따라 잠재해 있는 이견이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현일훈ㆍ김경희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