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탕감 그후①
20년 넘게 따라붙는 꼬리표, 신불자
홍정우(56·가명)씨는 점퍼 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쪽지를 꺼내 펼쳐 보였다. 홍씨는 지난 6년간 매달 이 가상계좌로 돈을 넣어왔다고 했다. 20년여 년 전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다.
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오산시 한 카페에서 정부의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사업 도움을 받은 홍씨를 만났다. 그는 오전에 건설현장 일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참이었다.
지난 20년간 홍씨에게 빚은 지울 수 없는 각인이었다. 점퍼 속 계좌번호 종이쪽지처럼 홍씨 인생에 꼬리표가 돼 달라붙었다. 회계사로 일하던 홍씨는 1995년 은행에서 생활 자금으로 수백만 원 대출을 받았다.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기 쉬운 시절이었다. 이자를 메우기 위해 여러 신용카드로 대출을 받는 ‘카드 돌려막기’를 했다. 빚은 점점 불어났다. 사업하는 친구 빚보증을 잘못 선 게 치명타가 됐다. 회사로까지 추심이 들어올까 봐 눈치가 보였다. 회계사는 신용이 중요한 직업이다. 그렇게 1998년 서른 중반 나이에 회사를 걸어 나왔다. 20년 후 일하게 된 경비업체를 제외하면 그의 마지막 직장 생활이었다.
부채는 가정도 무너뜨렸다. “채권단이 무척 극성이었어. 집에 찾아오고 전화하고 우편으로 보내고. 아내가 추심을 감당 못 하겠다기에 그때 합의이혼을 했지.”
초등학생이던 두 아들과도 생이별했다. 홍 씨는 그때부터 홀로 살면서 택시·버스·지게차·화물차 운전부터 만화출판·식당 등 서비스업을 전전했다.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일당으로 들어온 돈은 압류될까 봐 새마을금고에 소액만 보관했다. 이외에는 가족들 명의의 통장을 빌려서 체크카드를 만들어 썼다. 한창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할 나이에 빚쟁이들을 피해 주소를 옮기며 숨어 살았다.
2000만원 원금이 8000만원으로
“접수비까지 내고 채무 조정할 각오를 했는데, 한 달에 60만 원씩 8년을 갚아야 하니까. 당시 화성에서 누나랑 식당 운영할 때인데 많이 힘들었거든. 광고 보고 빚을 갚고 싶어 신청한 건데 바로 포기했지 뭐.” 결국 빚은 그대로 방치했다.
홍씨는 이번에 정부의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제도로 720만원 채무를 탕감받았다. 하지만 4000만원 넘는 다른 채무가 여전히 남아있다. 지금도 법원에서 채무 관련 문서가 우편으로 날아오지만, 그는 펼쳐보지 않는다. 자산관리공사 등에서 채무 조정을 할 수 있는 부채는 업무협약을 맺은 금융권으로 한정된다. 제1금융권은 연체한 지 오래된 채권을 대부업체 등에 매각해버렸기 때문에 일부 악성 채무는 구제받지 못하는 구조다.
거리에서 방황한 20년 “후회스럽다”
홍씨는 신용유의자로 산 지난 20년을 두고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좀 더 악착같이 빚을 갚았어야 했다”고 한탄하듯 말했다.
“10년, 20년이 짧은 시간 같지만, 거리에서 방황이 말도 못해요. 일하고 싶어도 못해. 직원으로 채용될 수가 없으니까.”
국가적인 이익을 생각해서라도 젊은 사람들의 부채를 조정해 제자리 찾게 해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내가 젊었을 때 이런 제도가 있었다면 회계사 일을 계속했을 텐데….”홍씨는 말끝을 흐렸다.
오산=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