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정보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의 주요 대상이 청와대 등의 권력형 비리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여야 4당이 합의한 공수처 설치법안은 문 대통령 설명과는 전혀 딴 판이다.
여야4당, 기소대상서 대통령 주변·국회 빼
청와대는 “안타깝다”고만 하면 그만인가
당장 형평성부터 문제다. 여야 4당은 “대통령 친·인척과 국회의원 등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하면 공수처가 법원에 불기소가 맞는지 판단해달라고 요청하는 재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왜 이들만 유독 두 단계(공수처 수사-검찰 기소)의 판단을 받도록 하는 것인가. 더욱이 검찰이 정치권력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공수처를 도입하는 것인데, 핵심 대상은 빼놓고 권력형 비리를 어떻게 잡을 수 있다는 말인가.
판·검사와 경찰 간부가 “7000여명의 공수처 수사 대상 중 5100여명”이라거나 “수사 관련 업무를 하기 때문에 검찰 기소권을 배제한 것”이란 설명으론 납득이 가지 않는다. ‘모든 대상에 기소권을 갖게 하자’는 여당 안과 ‘수사권만 주자’는 야당 안을 절충한 결과라고 하지만 이런 나쁜 절충은 안 하는 게 옳다. 특히 국회의원이 공수처 기소 대상에서 빠져나가게 된다는 점에서 ‘셀프 특혜’를 준 것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양심이 있다면 자신들(국회의원)이라도 대상에 넣어야 하는 것 아닌가.
청와대 측 반응도 이해하기 어렵다. 조국 민정수석은 “‘법학’은 ‘이론’의 체계이지만, ‘법률’은 ‘정치’의 산물”이라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또 강기정 정무수석은 “문 대통령은 대통령 친·인척이나 주변 권력에 대해 견제하는 기구로 공수처를 생각했는데 그게 안 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온 사안을 놓고 “정치의 산물” “매우 안타까워한다”고 하면 그만인 것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공수처 설치는 형사사법 시스템을 고치는 일이다. 정치적 절충으로 어물쩍 패스트 트랙에 태울 문제가 아니다. 여야4당의 공수처 합의안은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분할해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재조정하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도입한다는 기본 목적에도 맞지 않는다. 4당은 물론이고 청와대도 공수처 문제를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어설프게 국가 기관을 만들어놓으면 두고두고 애를 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