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항목은 인사 정책으로 3. 9점에 그쳤고, 일자리 정책(4.2), 부동산 정책(4.3), 재벌 개혁 정책(4.6)도 5점 이하의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나마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남북 및 한·미 관계로 6.1점을 기록했다. 다른 분야에서 워낙 죽을 쑨 탓에 상대적으로 대외정책이 좀 나아 보이는 것일 뿐, 평점으로 따지면 ‘양’에 해당하는 점수다.
서신 왕래, 소포 교환, 상호방문은
대북 제재와 무관한 인도적 문제
이산가족·탈북자 8만5000명에게
남북 잇는 가교 역할 하게 해야
‘김정은의 수석대변인’ 소리까지 들어가며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노심초사해 온 문 대통령에게는 적어도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점잖게라도 한마디 할 줄 알았지만, 문 대통령은 못 들은 척 넘어갔다. 오히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에 대한 김 위원장의 확고한 의지를 평가하고, “북한의 형편이 되는대로 장소와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만나자”고 제안했다. 김정은의 비위를 맞추며 대화를 구걸한 모양새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문 대통령의 처지를 백번 이해한다 하더라도 국민이 느낀 모멸감을 생각한다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2년간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과 북핵 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구해 왔다. 북핵 문제의 해결 없이 남북관계의 진전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통해 북·미 대화의 진전을 위해 노력하면서 대북 제재 완화를 통한 남북 경협의 재개와 관계 개선에 애써온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북핵 문제는 미국의 빅딜론과 북한의 단계적 해법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교착 국면에 빠져 있다. 그에 따라 대북 제재와 남북 경협 문제도 안 풀리고 있다. 그렇다고 평양과 워싱턴만 바라본 채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미국과 공조해 북핵 문제는 북핵 문제대로 풀어가면서 북핵 문제와 무관하게 남북이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대북 제재의 완화나 해제 없이도 남과 북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다.
독일 대학에서 동독사를 전공한 최승완 박사가 최근 펴낸 『동독민 이주사』에 따르면 동서독은 40년 분단 기간에도 꾸준히 서신과 소포를 교환하고, 상호방문을 통해 주민 간 접촉을 유지해 왔다. 동서독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 것은 375만~475만 명에 달하는 동독 이탈 주민이었다. 1968~88년 17억8500만 통의 편지가 서독에서 동독으로 발송됐고, 22억5000만 통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전달됐다. 같은 기간 6억3100만 개의 소포가 서독에서 동독으로 건너갔고, 2억1900만 개의 동독발(發) 소포가 서독에 배달됐다. 서독인은 횟수와 관계없이 연간 30일 범위에서 동독의 가족과 친척, 친구를 방문할 수 있었다. 동독인도 서독에 거주하는 가족과 친척의 결혼, 문병, 조문 등과 같은 가정사에 한해 횟수와 무관하게 연간 30일 범위 안에서 방문이 가능했다.
남북이 합의하면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인도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북핵 문제나 대북 제재와 무관하다. 개성에 남북연락사무소가 생겼지만 이런 문제를 논의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고작 이산가족 화상상봉용 장비 반출 문제나 논의하는 수준이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3200명 중 아직 생존해 있는 분이 5만5000명이다. 남한 내 탈북자도 3만 명이 넘는다. 이들에게 편지와 소포 교류, 상호방문을 허용해 남과 북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해 북핵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남북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북핵 문제 해결 노력은 노력대로 하면서 남북 주민 간 접촉을 늘리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그것이 남북이 합의한 판문점 공동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의 정신에 부합하는 길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