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대사는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2월 결렬로 끝났던 2차 북ㆍ미 정상회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직면했던 선택지는 ‘빅 딜’과 ‘굿 이너프 딜(충분히 좋은 거래)’ 사이의 선택이 아니었다”며 “하노이는 ‘노 딜(no deal)’ 이냐 ‘배드 딜(bad deal)’이냐의 문제였고, 트럼프 대통령이 올바른 선택을 내렸다고 생각한다”고 못 박았다.
해리스 대사는 이어 “하노이 정상회담 며칠 전 (북ㆍ미 실무협상에서) 북측의 제공(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아마 모든 경제제재에 대해 즉각 해제했어야 할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하노이 실무협상에서 북한의 제안에 대해 해리스 대사는 “(북한 제안대로라면) 영변 (핵시설)이 미래 어느 시점에 폐기될 것이란 약속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대량살상무기와 운반수단, 생산능력도 거의 모두 남아있었을 것이고 한국ㆍ일본ㆍ러시아 지역은 더 위험해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까지 언급한 건 이번 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전망인 북ㆍ러 정상회담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해리스 대사는 북한을 향해서도 직설화법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하노이 이후에도 미국은 북한과 계속 대화했다”며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를 약속했다. 할 일은 있으나 계속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뭘 원하는지 이제 알고 있다”며 “테니스로 친다면 공은 김 위원장 쪽 코트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치기 쉬운 샷을 넘겼다”고 말했다. 해리스 대사는 이날 오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도 “공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ㆍ미 동맹은 한반도와 지역 안보의 핵심축이며, 여전히 매우 강력하다”고 말했다. 해리스 대사는 기자간담회에선 김 위원장이 결단을 내릴 경우 “북한에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해리스 대사가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 정부가 제안한 굿 이너프 딜에 대해 “사실 뭔지 모르겠다”고 발언한 것은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빅 딜(영변 포함한 모든 핵시설의 신고ㆍ폐기ㆍ검증 및 모든 대량살상무기 동결ㆍ폐기와 제재 해제 맞교환)’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의 확인이다.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와 이에 따른 상응 조치를 요구하는 ‘스몰 딜’을 요구하고 있으며, 한국은 ‘굿 이너프 딜’, 즉 북ㆍ미가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한 뒤 조기 수확(early harvest)을 하는 ‘굿 이너프 딜’을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단 해리스 대사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워싱턴 한ㆍ미 정상회담 때 두 정상이 독대한 시간이 2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선 “2분보다는 더 있었다”며 “(독대 이후 확대회의에서도)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한ㆍ일 양국 간에 의견 일치를 볼 수 있다면 한ㆍ미ㆍ일 3각 동맹 역시 강화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미국 정부 내에서도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외교부는 23일 오전 김용길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일본 측 카운터파트인 외무성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도쿄에서 만나 강제징용 소송 판결 등 현안에 대해 국장급 협의를 가질 예정이라고 이날 알렸다.
전수진 기자, 외교부 공동취재단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