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의 단초가 된 건 지난달 22일 삼일회계법인이 내놓은 ‘감사범위 제한으로 인한 한정’의견의 감사보고서였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와 수익에 관해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제표 일부가 맞다고 볼 수 없다는 의미였다.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삼일회계법인의 감사과정은 매끄럽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충당금 등을 놓고 밀고 당기기를 벌였다. 결국 삼일 측은 ‘적정’ 감사의견을 내기를 거부했다.
감사인 ‘한정’ 의견이 사태의 단초
아시아나 내부 소통 부재 탓 거론도
시장 신호 외면하면 대가 치르게 돼
아시아나항공은 서둘러 삼일 측 지적대로 재무제표를 바로잡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취약한 재무사정이 시장에 고스란히 노출돼버렸고, 시장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아시아나항공 사태의 미스터리는 여기에 있다. 아시아나는 왜 감사인에게 ‘불신’ 판정을 받는 상황까지 치달은 것일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 회장의 판단은 무엇이었을까.
매출 7조원을 훌쩍 넘는 상장기업이 감사인으로부터 부정적 의견을 받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이익과 비용을 보는 관점은 기업과 회계법인이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합의점을 찾기 마련이다. 아시아나 측은 왜 감사인의 의견을 진작 수용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채권단 내부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은 영업이 나쁘지 않다. 회계 파문만 없었어도 문제가 터지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항공업계를 잘 아는 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는 금호그룹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부재 가능성을 지적한다. “아시아나에선 박삼구 회장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 박 회장은 젊어서부터 여러 분야를 섭렵해 항공업 전반에 대해 해박하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관록이 있다. 그런 회장의 결정과 다르게 상황이 돌아간다는 것을 보고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엄청난 카리스마를 지닌 사주의 만기친람형 경영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사실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만큼 기업 경영에 해로운 것도 없다.
또 다른 분석 하나는 박삼구 회장의 자신감이다. 그의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 회장은 10년 전에도 유동성 위기에 몰려 그룹 회장직을 내놓았다가 불사조처럼 돌아왔고, 1년 전에도 재무구조개선을 약속하고 채권단을 설득해냈다. 박 회장은 이번에도 위기를 넘어갈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과도한 자신감이 일을 그르친 셈이 된다.
아시아나항공 사태는 21년 전 외환위기 직후 대우그룹의 위기를 알린 증권사 보고서를 떠오르게 한다. 1998년 10월 29일 노무라증권 서울지점에서 나온 ‘대우그룹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4쪽짜리 보고서는 ‘정부의 금융기관 회사채 보유제한 조치로 대우가 유동성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대우가 당시 비상벨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강력한 자구노력을 펼쳤더라면 10개월 뒤 그룹이 해체되고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파국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시장은 냉정하다. 이제 회계사들도 일감을 주는 대기업 원하는 대로 감사보고서를 써주진 않는다. 분식을 눈감았다간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시장이 불신하는 기업에 돈을 빌려줄 금융기관도 없다. 시장이 울리는 신호를 외면하는 기업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 아시아나 사태가 전하는 메시지다.
이상렬 경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