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세월호 참사 5주기를 하루 앞두고 전남 영암 지역 중학생들과 주민, 곡성 한울고 학생 등 150여 명이 유채꽃을 바다에 던졌다. 사회자는 “(사고가 안 났다면) 제주도 유채꽃밭을 맘껏 뛰어다녔을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5년 전 그날 사고 안 났다면
제주 유채꽃밭 뛰어다녔을 텐데…”
분향소 철수 자리엔 ‘팽목 기억관’
추모객 두고 간 인형·장난감 빼곡
바람이 거세게 분 이날 팽목항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원불교 진도교당 최형일(62·여) 교무 일행은 방파제 난간에 새로 만든 노란 리본과 종을 달았다. 최 교무는 “어른들의 부주의로 세상을 떠난 어린 꿈나무들이 다음 생에선 못다 한 꿈을 펼치고 살라는 뜻에서 해마다 종을 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팽목 분향소’가 철수한 자리에는 낡은 컨테이너로 된 ‘팽목 기억관’이 서 있다. 기억관에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밝게 웃고 있는 단체 사진들이 추모객들을 맞았다. 사진 앞에는 추모객들이 두고 간 인형과 장난감·꽃 등이 놓여 있었다. 문규현(74) 신부도 이날 홀로 기억관을 찾았다. 기도 후 학생들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부산에서 온 목수’라고 본인을 소개한 정판식(60)씨는 “세월호 참사가 나던 날 하루 종일 TV를 지켜봤다”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게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인데 그때는 전혀 그 역할을 못 했다”고 했다.
단원고 고(故) 고재우군 아버지 고영환(51)씨는 2014년 10월부터 팽목항을 지키고 있다. 고씨는 “아이를 살리려고 (팽목항에) 내려왔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며 “(그해) 4월 20일 수습된 아들은 방금 샤워하고 나온 얼굴이었다. 지금도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허무하게 떠날 줄 알았다면 가고 싶다던 공고 전자과를 가게 놔둘 걸 그랬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방파제 앞 여객선 대합실에는 오후 3시 20분에 팽목항을 출발하는 문모(71)씨 등 조도 주민 3명이 여객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씨 등은 “그때는 (팽목항에) 유가족들이 있어서 (주민들은) 숨도 못 쉬고 다녔다. 같이 상을 치렀다”고 했다. 그는 “조도의 주 수입원은 톳과 김 양식, 멸치잡이 등인데 (세월호) 사고 이후 판로가 막히고, 관광객도 뚝 끊겼다”면서도 “아이들이 많이 죽어 가슴이 아파 불편해도 내색을 못 했다”고 했다.
이날 팽목항에서는 오후 4시 16분에 맞춰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행사 추진위원회 주관으로 길굿 퍼포먼스 등 추모행사가 열렸다. 오후 7시에는 ‘우리는 왜 팽목항을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이어졌다. 추진위 김남용씨는 “팽목항은 참사 당시 모든 구조 및 봉사 인력이 투입되고, 수습된 희생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간 상징적 장소”라며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참사를 기억할 수 있는 추모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도=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