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익’→‘전인적 결정’
과거 헌재는 질병ㆍ강간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임산부의 낙태 결정은 단지 ‘사익’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므로 태아의 생명권보다 중하게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이번엔 “자기결정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헌법상 보호되어야 할 권리라며 그 무게를 달리했다. 헌재는 “임신ㆍ출산ㆍ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로 이를 유지할지는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한 전인적(全人的) 결정”이라며 이를 단지 태아의 생명권과 무게를 달아 우선한 과거 방식이 “사실상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것”과 같다고도 지적했다.
이한본 변호사(민변 여성위원회 부위원장)는 “헌재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대결 구도로 몰아갔던 과거 논리가 잘못됐음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낙태를 단순한 결정이 아닌 이로 인해 근본적인 삶의 방향이 좌우되는 문제로 보고 이런 내용까지 자기결정권에 포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②낙태죄, 7년간 거의 보복에만 이용됐다
헌재는 “낙태 수술과정에서 의료 사고나 후유증 등이 발생해도 법적 구제를 받기가 어려우며, 비싼 수술비를 감당해야 하므로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기 쉽지 않다”며 “헤어진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 가사ㆍ민사 분쟁의 압박수단 등으로 악용되기도 한다”고 썼다. 일부 재판관들은 “드물게 기소되는 사례도 악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상당수였다”며 당장 낙태죄 효력을 상실해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냈다.
실제로 중앙일보가 최근 5년(2014~2018)간 선고된 낙태죄 관련 공개 판결문 71개(39건)를 분석한 결과 여성들은 상대 남성의 고발로 법정에 서는 경우가 잦았다. 장모(20)씨는 2016년 교제하던 여자친구와 헤어지자 그를 낙태죄로 고발해 함께 처벌을 받았다. 2012년 낙태한 여자친구와 돈 문제로 소송이 오가자 그를 낙태죄로 고소한 뒤 혼자 무죄를 선고받은 안모(30)씨도 있었다.
낙태죄가 형벌로서 사문화(死文化)됐다는 지적은 7년 전 합헌 결정 때도 있었다. 다만 이를 대체할 규제 방안이 없어 낙태죄는 남겨둬야 한다고 한 과거와 달리 헌재는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ㆍ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게 더 실효성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③모든 태아 낙태 불가→22주까지는 달리 할 수도
독자적인 생명으로 인정되는 태아의 범위는 ‘임신 22주부터’라고 봤다. 최신 의료 기술이 뒷받침 될 경우 22주 내외부터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 학계 분석을 근거로 들었다.
임신한 여성에게 낙태 여부를 판단할 ‘결정가능기간’도 충분히 줘야한다고 했다. 여성이 임신 사실을 인지하고 난 뒤 자신을 둘러싼 여러 상황과 정부 지원 등, 주변의 조언 등을 고려해 임신을 유지하는 게 가능한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낙태를 결심한 뒤에도 병원을 찾고 각종 검사를 받는 기간도 고려했다.
일부 재판관들은 임신 14주까지의 낙태는 즉시 위헌 선언도 가능하다고 봐, 임신 12주(태아가 고통을 느끼지 않는 기준)까지는 낙태가 괜찮다고 봤던 과거 소수 의견보다도 여지를 넓게 뒀다.
박사라ㆍ이수정 기자 park.sar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