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웅·여오현 ‘우승 브로맨스’

중앙일보

입력 2019.04.0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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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챔프전 우승을 합작한 최태웅 감독(왼쪽)과 여오현 코치. [김상선 기자]

“자꾸 따라다녀요.”(최태웅)  
 
“졸졸 따라다녀야죠.”(여오현)

현대캐피탈 우승 만든 20년 지기
2000년 삼성화재 선·후배로 인연
최, 선수로 4번, 감독으로 2번 우승
여, 14번 챔프전 출전해 9번 정상

지난 1일 프로배구 시상식장에서 만난 현대캐피탈 최태웅(43) 감독과 리베로 여오현(41)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2년 만의 우승 때문이다. 두 사람은 삼성화재(2000~10년)와 현대캐피탈(2013~19년)을 거치며 16년을 선-후배, 감독-선수, 감독-코치로 함께 했다.
 
최 감독은 2014~15시즌 직후 은퇴했다. 곧장 현대캐피탈 사령탑에 올랐다. 이듬해 정규리그에서 우승했다. 이어 2016~17시즌에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했다. 현대캐피탈엔 10년 만의 정상 탈환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2년, 또 정상에 올랐다.
 
최 감독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다”며 여 코치를 우승의 수훈갑으로 꼽았다. 리베로(수비 전문선수)인 여 코치는 정규 시즌 동안 후배 함형진과 교대로 출전하며 체력을 아꼈다. 포스트시즌에는 서브 리시브와 디그(스파이크를 받는 것)를 도맡았다. 그는 “정규 시즌에 출전시간이 짧아도 계속 경기를 했기 때문에 준비는 잘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선수로 네 번, 감독으로 두 번 우승한 최 감독은 “우승 뒤에도 여러 행사 때문에 푹 쉬지 못했다”며 “올 시즌 문성민, 전광인, 신영석 등 선수 부상이 많았다. 사실 챔프전 3연승은 예상 못 했다. 과정이 힘들어 더 가치 있는 우승 같다”고 말했다. 여 코치는 깨기 힘든 기록을 세웠다. 프로배구 원년인 2005년부터 이번까지 모두 15번 차례 챔프전이 열렸는데, 14번 출전해 9번 정상에 섰다. 그는 “우승은 하면 할수록 좋다. 9번 우승을 했어도 늘 새롭다”며 기뻐했다.
 
최 감독과 여 코치는 똑같이 아들 둘씩 뒀다. 아이를 키우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최 감독은 “배구를 하고 싶다”는 아들을 만류했다. 최 감독은 “너무 힘든 길이란 걸 알기 때문에 말렸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 코치는 장남 광우(13)를 배구선수로 키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경기장에 와서 그런지 무척 하고 싶어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했는데 나를 닮아 키가 작은 편이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광우 군은 아버지와 달리 세터다. 최 감독은 광우 군의 롤 모델이 자신이라는 말에 “사회생활을 잘한다”며 웃었다.
 
최 감독은 2009~10시즌 직후 자유계약(FA) 보상 선수로 삼성화재에서 현대캐피탈로 이적했다. 여오현 코치는 2012~13시즌 직후 FA로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었다. 최 감독이 “자꾸 나를 따라다닌다”고 하자 여 코치가 “그러게 졸졸 따라다닌다”고 맞장구쳤다. 선수 시절 여 코치는 최 감독을 “형”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사석에서도 “감독님”이라고 예우한다.
 
마흔을 훌쩍 넘겼지만, 여 코치는 여전히 코트에서 가장 열심히 몸을 던지고 가장 큰 목소리로 선수들을 독려한다. 최 감독은 “우리 팀엔 스타가 많다. 그만큼 잘 챙겨야 하는데, 여 코치가 알아서 잘해줘 걱정이 없다”며 “고맙다”고 여 코치에게 인사했다. 여 코치는 “감독님과 구단이 45세까지 현역으로 뛰는 ‘45세 프로젝트’를 만들어줬다. 믿어주는 만큼 (결과로) 보답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프로배구는 현재 FA 협상이 한창이다. 여 코치도 FA 자격을 얻었다. “여 코치도 팀을 떠날 수 있는 것 아닌지” 물어봤다.
 
“(팀에 남기로) 얘기 다 됐어요. 구단에서 연락 왔지?”(최태웅)
 
“전화 안 왔는데요? 제가 갈 데가 어딨습니까.”(여오현)
 
두 사람의 브로맨스는 다음 시즌에도 계속될 것 같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