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10시 30분, 광화문 광장 가운데에 차려진 '제주 4.3 71주년 추념식' 무대 앞에는 빨간 동백꽃 조형물이 놓였다. 제주에서, 서울에서 모여든 유족들과 관계자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서로 인사를 나눴다.
부청하(76) 재경유족회장은 "지난해 70주년 행사 때도 참여했는데, 감개가 무량하다. 그동안 '폭도의 자식'이라고 연좌제로 고통받았는데, 광화문에서 두 번째로 행사하다니 유족으로선 꿈에도 생각 못 해본 일"이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4.3 피해자의 아들이라는 고모(65)씨는 "4.3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 일인데, 우리 아버지는 4.3때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한테 쌀이랑 옷가지를 줬다가 감옥에 6개월 살다 왔는데 내가 성인이 돼서야 말해주더라"면서도 "돌아가신 분이 1만5000명인데 6개월 옥살이는 명함도 못 내민다"고 손을 내저었다. 그는 "4.3은 항상 마음속에 있다. 오늘은 경찰청장이 온다고 해서 보러 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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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청장에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나눈 유족 이지순(53)씨는 "경찰청장이 4.3 행사에 오는 일이 생길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현실이 되고 나니 마음이 더 급해진다"며 "4.3에 대해서 입을 떼는 단계고, 이 이야기가 지속돼서 대한민국에 '역사'로 기록되는 게 지금으로서 가장 큰 소망"이라고 덧붙였다.
흰 국화·빨간 동백 꽃바구니... 객석 곳곳 눈물
앞서 민 청장과 인사를 나눴던 이지순씨(재경 4.3 유족회)가 '아버지께 드리는 글'을 읽자 객석 곳곳에서 시민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할아버지가 4.3 사건 때 돌아가셨다는 이씨는 "아버지, 너무 늦게 아버지를 이해해서 많이 죄송합니다. 자식들 앞길 열어주려고 분탕하고 있었다는 걸요. 아버지, 기억하겠습니다. 제가 연좌제에 걸려 취직이 안될까 봐 염려하던 아버지를요. 이렇게 아픈 가족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며 4.3 사건 이후에 유족들이 겪었던 고통을 말하고, "아버지, 아버지 손녀들이 살아갈 세상을 지켜봐 주십시오"라며 끝을 맺었다. 한 유족은 "내가 8살 때 4.3이 나서, 아버지는 시신을 찾았고 둘째 큰아버지는 시신도 못 찾았다"며 연신 눈가를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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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념식 말미에는 4.3 희생자 가족들과 추모객들의 헌화가 이어졌다. 객석에서 눈물을 훔치던 유족들은 줄을 서서 기다린 뒤 제단에 흰 국화꽃 한 송이씩을 얹고 묵념을 한 뒤 돌아섰다. 추념식이 끝난 뒤 조계종에서 진행하는 불교 천도제가 이어지고, 오후에는 천주교식의 추모 미사도 열린다. 4.3 범국민위원회 측은 "오늘 오후 5시에 국방부 차관이 이곳을 찾을 것이라고 전해왔다"고 밝혔다.
민 청장 "무고하게 희생되신 분들께 분명히 사죄"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