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입수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기연)의 비공개 보고서 ‘건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평가를 통한 해외건설 빅 이슈 개발 Ⅲ(2018년 12월)’에 따르면 이같이 나타났다. 건설산업 글로벌 경쟁력이란 건설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업 역량과 제도, 정책 등 국가의 총체적 능력을 뜻한다.
건설기술연구원 비공개 보고서
설계의 미국 1위, 시공의 중국 2위
기술력·가격 어중간 끼인 신세
설계·시공 분리 같은 규제도 발목
“IT 접목 스마트공법으로 돌파를”
주요 경쟁국인 일본은 한국보다 5단계 높은 7위를 기록했다. 평가 첫해인 2011년 11위를 차지한 이후 꾸준히 순위를 높이고 있다. 2016년부터 한국을 앞질렀다. 한국은 저가 공세를 펼치는 후발 국가와 기술력을 앞세운 선진국들 사이에 낀 ‘넛 크래커’ 신세라고 건기연은 진단했다.
최근 3년간 한국의 건설산업 경쟁력이 급락한 이유로 건기연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시공과 설계 분야 모두 해외 매출 증가율이 -20%대를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건설산업이 한국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경쟁력 급감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건설업의 국내총생산(GDP) 성장 기여도는 39%(2017년 기준)를 차지한다. 수출 실적(2007~2016년)도 5377억달러로 반도체(4991억달러)나 조선(4130억달러)보다 많다.
세계 건설시장 규모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영국의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세계 건설시장 규모는 2009년(7809억달러)부터 매년 3%가량씩 꾸준히 상승해 2018년에 10조2200억달러를 기록했다.
“해외건설시장도 52시간제 영향 … 탄력근로 합의점 찾아야”
이 흐름은 2030년을 넘어서까지 지속할 전망이다.
한국 건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건기연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스마트 건설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마트 건설 기술이란, 전통적인 건설 기술에 사물 인터넷·빅데이터·로봇 등 첨단 IT 기술을 접목해 생산성과 안전성을 비약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또한 “건설사들이 단순 시공 수주 위주의 사업 방식에서 투자개발형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투자개발형 사업을 활성화하려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자금조달 능력을 키워야 한다.
정부는 기술·개발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외교 활동을 통해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진출을 도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외 사업에 특화된 인력 양성에 나설 필요가 있다.
아울러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해외 건설 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기 때문에 정부는 건설업계와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업계는 “탄력근로제 단위 시간을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기연 외에도 학계에선 다양한 경쟁력 제고 방안을 제시한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 원장은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며 “건축설계와 시공의 분리,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으로 이원화된 등록제도, 과도한 하도급 규제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건설사 경영진이 기업가 정신을 갖춰야 한다”고도 했다. 많은 건설사가 창업 세대에서 2세·3세 경영으로 접어들면서 현상 유지에만 집중하는데,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M&A 등을 통해 혁신을 지속하라는 것이다.
건설사들이 IT 기업인 구글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재준 한양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최근 구글은 캐나다 토론토시와 협약을 맺고 스마트시티 건설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며 “IT 기술을 이용한 도시 신경망을 중심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형식의 도시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건설산업의 혁신을 방해하는 고질적인 부패를 척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건설 엔지니어를 경시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개선돼야 한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