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오페라를 보았던 날을 나는 기억한다.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당시의 시민회관에서 본 플로토의 ‘마르타’였다. 그 때의 오케스트라 소리와 합창소리, 무대와 의상과 분장, 아리아를 부르던 테너의 목소리 등이 아직 내게 생생하게 남아있다. 캄캄하고 꿀쩍거리는 달동네 골목을 걸어 집에 돌아오면서도 오페라에서 보았던 화사한 장면과 아름다운 노래가 눈에서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꼭 오페라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당시에 읽었던 ‘로빈 후드의 모험’ 중의 한 에피소드를 주제로 하리라 계획도 세웠다. 그 날 이후 오페라에 대한 나의 동경은 멈추지 않았다. 위촉도 없이 오페라를 두 편 썼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고 또 혼자 하기에는 어려운 일이어서 위촉 없이 쓴다는 것은 무모한 일인데 그랬다. 그만큼 동경이 컸다. 그 결과였는지 학교에서 은퇴할 즈음 오페라단 단장이 되었다. 단장이 되고 나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으니 ‘오페라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일상을 떠나 나를 낯선 곳에 옮겨 놓고 다른 삶을 바라보기도 하고 나의 삶을 돌이켜보기도 하는 일이 좋다. 여행광도 있다지만 그런 정도는 아니고 다만 여행의 기회를 마다하지 않고 또 비용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여행에 마음이 설레지 않는 사람 눈에는 나의 이 기호가 사치로 보일지 모른다. “여유도 많다. 뭐하러 그 고생하면서 돈과 시간을 쓰고 다녀?” 사실 여행을 하면 ‘필요 없는’ 돈을 쓴다. 교통비는 물론이고 숙박비도 만만치 않다. 식사도 해야 하고 입장료도 낸다. 이 모두가 집에 있으면 생기지 않을 지출이다. 그런 지출을 하면서 얻는 것이라야 새로운 거리, 낯선 풍광, 다른 문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필요 없는’ 일 가운데 다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무엇이 있으니 여행을 간다. 예술단체를 폐지하려는 도시에 없는 것은 예산이 아니다. ‘필요 없는’ 일 가운데 있는 무엇을 찾는 마음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우리가 어머니에게 항상 양말이나 속옷 같은 실용적인 생일선물을 드리지 않는다. 가난한 어머니라고 왜 보석 박힌 브로치를 싫어하겠는가? 왜 품위 있는 식당에서의 외식이 즐겁지 않겠는가? 매일도 아니고 일 년에 한 번 있는 생일날에? 우리는 다소 무리해서라도 그 지출을 감당한다. 슬며시 떠오르는 지갑 걱정은 즐거워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잊게된다. 어머니도 “분에 넘치는 호사다. 필요 없다” 고 말하지만 브로치를 볼 때마다 즐거움을 되새기며 많은 가난한 날들을 견디며 살아간다. 어머니에게 그 브로치는 분에 넘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사치가 아니다. 세상에는 돈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일도 있다.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