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한 책은 2012년 대선에서 진 문 대통령이 꼭 1년 뒤에 펴낸 『1219 끝이 시작이다』였다. 그리고 “그 책을 보면 앞으로의 문재인이 보일 것”이라고 말한 ‘그’는 ‘문재인의 복심’ 양정철이었다.
『1219 끝이 시작이다』는 자기고백 형식의 패배 보고서다. 재기를 노리는 문재인 진영의 고뇌가 담겨있다. 서두에 문 대통령은 “책을 꼭 써야 할까 많은 생각을 했다. ‘패장은 말이 없다’는데 책이 변명이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보고서를 제출하는 건 패장에게 남은 의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전략 미스에 대한 뼈아픈 반성, 다시는 지고 싶지 않다는 권력의지가 들여다보였다. 특히 자기비판이 신랄했다.
“안보에 대한 신뢰 없이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 “5060세대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우리에겐 일종의 근본주의가 남아 있다. 유연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막고 있다. 통합을 말하면서도 선을 긋고 편을 가른다”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성장인데, 그에 대한 담론이 부족했다”….
그는 책 속 자기비판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2015년 당 대표가 된 다음 날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보수성향 종교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도 찾아갔다. 탕평을 약속했고, 실제로 당내 ‘비노(비노무현)’ 인사들에게 기회를 줬다. 이런 회심의 프로젝트를 문 대통령과 함께 고민한 이가 바로 양정철이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2년 가까이를 해외에 머물던 그가 곧 서울로 돌아간다. 집권 여당의 싱크탱크 수장이 그의 새로운 임무다. 진영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편과 남의 편에 선을 긋지 않고, 복지뿐 아니라 성장에도 힘을 쏟겠다는 건 문 대통령과 양정철이 함께 고민했던 2013년의 초심이었다.
6년 전 ‘패장 문재인’의 절박했던 초심과 ‘집권 3년 차 대통령 문재인’의 현재 모습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는 국민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간극을 메우는 양정철의 역할을 기대한다. 도쿄 생활에선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혹시 반일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을 서울에서 만난다면 따끔한 충고 한마디도 해줬으면 한다.
서승욱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