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물 보냐" 말에 학생 극단선택…망신 준 '도덕쌤' 처벌받나

중앙일보

입력 2019.03.27 15:29

수정 2019.03.2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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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교사에게 혼난 중학생이 "무시 받았다"며 투신해 숨졌다면 그 교사에게도 책임이 있을까. 이는 지난 25일 경북 포항 북구의 한 중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다. 이날 도덕 자습시간에 교사는 "성인물을 봤다"며 학생에게 약 20분간 엎드려뻗쳐를 시켰고, 학생은 "성인물이 아니다"며 항변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아동 학대 전문변호사 두 명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사에게 모욕죄, 명예훼손죄, 신체적 학대죄 등을 적용할 순 있지만, 교권 침해의 문제도 걸려 있어 사건을 자세히 봐야 한다"고 했다. 

25일 경북 포항 한 중학교 자습시간
학생 소설책 보자 교사 "성인물 아니냐"
혼난 학생, 다음 시간 극단적 선택

신수경 법률사무소 율다함 변호사는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 보는 앞에서 모욕적인 말을 여러 차례 하면 교사가 주도해 학생을 왕따시켰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사례는 일회성이기 때문에 정서적 학대로 단정 짓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지난 25일 중학교 3학년생이 도덕교과서에 "무시를 받았다"는 유서형 글을 남긴 채 투신했다. [사진 김군 아버지]

 
대신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는 적용할 수 있다. 교사가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 책이 정확히 '성인물'인지 확인 없이 학생에게 "성인물을 봤다"고 벌을 줬을 경우다. 사건을 수사 중인 포항북부경찰서에 따르면 학생이 읽은 책은 15세 미만 관람 불가의 소설책이다. 장르는 전쟁 판타지다. 학생은 투신 전 도덕교과서에 "책의 내용도 제대로 보지 않고 서브컬처(비주류 문화)를 무시했다"고 썼다. 
 
신명철 법무법인 금성 변호사는 "만약 교사가 다른 친구들 앞에서 '왜 성인물을 좋아해'라는 식으로 비난했다면 모욕죄로 볼 수 있다"며 "마찬가지로 책이 실제 성인물이 아닌데 성인물이라며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명예를 훼손했다면 명예훼손죄에도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두 변호사는 교사가 단계적으로 지도 행위를 시도하지 않은 데엔 아쉬움을 비췄다. 신수경 변호사는 "체벌에는 단계가 있다. '수업시간에 안 봤으면 좋겠다'고 말로 지도한 다음에 책을 뺏어보고 그것도 안 되면 쉬는 시간에 아이를 따로 불러서 지도해야 한다. 그만큼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데 단순히 20분간 성인도 하기 힘든 엎드려뻗쳐를 하게 했다면 신체적 학대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북 포항북부경찰서 전경. [사진 포항북부경찰서]

다만 교사가 "진짜 성인물을 보는 줄 알았다. 교육적 목적의 훈육방식 중 하나였다"고 주장하면 교권 침해의 여지가 있어 또 다른 다툼이 될 수 있다. 신수경 변호사는 "자습시간을 어떻게 운영하고 어떤 행위까지 허용할 것인가에는 담당하는 교사의 재량이 작용하는 부분"이라며 "본인은 필요한 지도행위라고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명철 법무법인 금성 변호사도 "교사의 잘못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따져볼 순 있지만, 자살과 선생님의 행위를 연결해 버리면 교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북 포항의 한 초등학교 교사 홍모(31)씨는 "교사 훈육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어떤 교사가 학생에게 극단적 선택을 하라고 혼내겠느냐"며 "소극적인 학생의 경우 지도 시 교사도 신경을 쓰지만 이런 일로 교사가 전부 고소당한다면 아무도 학생을 훈육하려 하겠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대구 중구의 중학교 교사는 "교사의 잘잘못은 따져야 겠지만 교사가 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비난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포항=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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