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하얼빈 역사에서 3㎞가량 떨어진 조선민족예술관의 안중근 기념관을 찾았다. 관리 직원은 “상부로부터 하얼빈역으로 기념관을 이전한다는 지침을 전혀 듣지 못했다”며 “한국에서 보도가 나왔다고 들었지만 현시점에서는 오보”라고 말했다.
의거 현장인 1번 플랫폼 저격 표지석 없어
기념관 직원 “이전 지시 못들어” 이전說만
“천당에서 기쁘게 만날것” 마지막 편지만
“드릴 말씀은 허다하오나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온 뒤 누누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어머니 조마리아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순국일을 맞아 찾아온 관람객의 눈시울을 적셨다. 일산에서 왔다는 관람객은 “안 의사의 유물을 직접 보니 가슴이 찡하다”며 “어머니와 아들의 마지막 편지가 인상에 남는다”고 말했다.
네이멍구(內蒙古)에서 온 관람객 치커(齊柯)는 “역사를 잊지 말고 우리가 스스로 강해지자(不忘歷史 吾輩自强)”이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은 다 당신과 같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는 소감 등 방명록에는 한국 관람객과 교포들이 적은 한글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얼빈역은 건물 외관만 같을 뿐 전혀 남북 양쪽에 새로운 역사로 변모해 있었다. 새롭게 지은 북쪽 신청사에서 티켓을 끊고 보안 검색을 통해 2층 대합실에 들어서자 ‘100년 하얼빈역’이라는 다큐멘터리 영상이 한쪽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8개 플랫폼 14개 개찰구, 연간 승객 2800만명을 처리할 수 있는 대규모 기차역답게 큰 규모였다.
플랫폼은 모두 새롭게 단장됐다. 의거가 있었던 1번 플랫폼은 아직 사용되지 않고 남쪽 구역사 출구로 이용되고 있었다. 저격 현장의 표지석도 보이지 않았다.
“갑오 중일전쟁 후 본세기 초에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두 나라 국민의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공동투쟁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중국인의 영원한 총리로 추앙받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는 1963년 ‘중·조(한·중) 역사관계에 관한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각에서는 안중근 기념관의 위치가 중·한, 중·일 관계의 친소를 반영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얼빈=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