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개발 역사 살펴 보니
현재 영변의 핵 시설은 가동 중단 상태라는 게 국정원의 분석이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3월 5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북한 영변 5MWe 원자로는 지난해 말부터 가동이 중단된 상태이며 현재 재처리 시설 가동 징후는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정보위 소식 의원들이 전하고 있다. 풍계리 핵 실험장도 지난해 5월 이후 갱도가 방치된 상태로 특이 징후는 없다는 것이다. 미사일 발사장인 동창리에서 철거했던 시설 일부가 복구되는 듯한 움직임이 포착된 것에 비해 영변은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은 지난 3월 5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이 영변 핵 시설을 폐쇄해도 핵 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이노넨 사무차장은 “북한이 사용하는 가스 원심분리기에 기반한 우라늄 농축 기술은 전력을 많이 소모하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는 산업시설의 작업장이나 심지어 수퍼마켓처럼 보이기도 한다”며 파악에 어려움이 있음을 강조했다.
옛 소련에 핵물리학자 파견하며 핵 개발 시작
북한이 1960년대 들어 핵 개발을 위한 초보적인 준비에 착수했다는 분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김일성이 훨씬 이전부터 핵 개발 구상을 구체화했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핵폭탄 투하로 일본 제국주의가 항복하고, 조국이 해방되는 걸 목도하며 김일성이 핵무기의 위력을 실감했을 거란 얘기다. 핵 개발을 위해서는 기술과 자금 외에 최고지도자의 의지라는 3대 핵심 요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代)를 이은 집착이 북핵 개발의 원동력이었다는 진단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북한 핵의 오늘을 있게 한 인물은 월북 인사인 도상록이 꼽힌다. 해방 직후 서울대 교수로 있다가 1946년 5월 월북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도상록 교수는 원자력 이론서 30여 권을 집필하고 핵 가속 장치를 개발해 김일성대학에 설치하는 등 북한 핵개발의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다. 함경남도 함흥 출생인 도 교수는 일본 도쿄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개성 송도중학교 교원 시절에는 ‘헬륨수소 분자의 양자역학적 취급’ ‘수소 가스의 양자역학적 이론’이란 논문 두 편을 미국 학술지에 발표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어 중국 창춘(長春)공업대학, 서울대에서 근무했다. 월북 후에도 그는 핵물리학 분야 등에서 14개의 새로운 과목을 개척하고 4만쪽에 가까운 교재를 직접 집필하는 등 왕성한 연구활동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80년 10월 노동당 제6차 대회 당시 도 교수를 당 대회 대표로 임명했다. 83년에는 ‘인민과학자’ 칭호와 김정일 명의의 표창장까지 주면서 격려했다. 도 교수가 노환으로 교단에서 더 이상 가르칠 수 없게 되자 김정일은 대학교수직을 유지한 채 자택에서 핵 관련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조치했다고 한다. 1903년생인 도 교수는 90년 87세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또 조선혁명박물관에 도상록의 사진을 걸어놓고 그의 업적을 기리도록 했다.
핵 기술자·전문가에 대한 체제 차원의 우대와 배려는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이어졌다. 김정일이 2011년 12월 사망하면서 핵을 넘겨받은 김정은 위원장은 이후 핵 물질 양산과 소형화·경량화에 공을 들여왔다. 핵 무기 체계 완성을 위한 작업에 전력투구한 김정은은 집권 초기 평양 대동강변에 46층짜리 현대식 고층 아파트 2개동을 지어 핵 개발 기술자와 김책공대·김일성대 교수들에게 선물했다. 이어 과학자거리 등을 만들어 기술 인력의 사기를 북돋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핵에 대한 김정은의 애착은 그의 정책 노선에도 드러난다. 김정은이 2013년 3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내놓은 ‘경제·핵 병진노선’이 그 핵심이다. 핵 보유로 재래식 무기에 투입될 군사비를 덜 수 있게 됐으니 이를 민생경제에 돌리겠다는 게 김정은이 내세운 명분이다. 하지만 국방비 비중은 16.0%(실제는 은닉예산 포함 30% 수준)에서 15.9%로 겨우 0.1%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는 게 예산결산 과정에서 확인되고 있다. 북한의 공식자료를 통해봐도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대북 전문가 사이에선 김일성이 1962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국방 병진노선의 전철을 김정은이 밟을 것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만큼 핵 개발에 엄청난 돈이 드는 데다 국제사회의 정치·경제적 압박을 견디기 힘들다는 지적이었다. 북한은 결국 지난해 4월 핵·경제 병진노선을 사실상 포기하고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으로 전환을 선포했다.
실제로 핵 개발에는 북한의 경제 수준으로 볼 때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북한이 2006년 첫 핵 실험을 실시하자 우리 정부 당국은 한 발의 핵 탄두 개발에 2억9000만~7억6400만 달러의 직접 비용이 들어갔을 것이란 추정치를 내놨다. 여기에 추가로 생산한 플루토늄까지 포함하면 북한의 총 핵 개발비는 5억600만~14억21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관측이었다. 북한은 또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1979년 영변에 발전출력 5MWe급의 제1원자로를 착공해 86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정부는 북한이 이 원자로 건설에 5700만~1억7000만 달러를 썼다고 본다. 또 사용 후 핵연료를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해 한 발 분량(6~8㎏)의 플루토늄(Pu-239)을 생산하는 데는 2400만~7300만 달러가 소요됐을 것으로 판단한다. 북한의 경제난을 고려하면 엄청난 돈이다. 북한 주민들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구호를 내걸어야 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해야했다. 몰래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한 90년대 후반에는 사태가 속출할 정도였다.
불법 무기거래, 위폐 제조, 마약 판매
북한의 핵 개발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풍계리 핵 실험장이다. 동북부 산악 지대인 함북 길주군에 위치한 풍계리 실험장은 2006년 10월 첫 핵 실험 이후 모두 6차례의 실험이 이뤄진 곳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지하갱도 입구와 주변 시설물 등은 미국 키홀(KH-12) 첩보위성의 단골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핵 실험 때는 수 백m 갱도를 파고 실험 장비를 설치하게 된다. 또 콘크리트로 이를 매설·봉인하는 과정도 거친다.
사실 핵 실험은 개발 중인 핵무기의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미 생산해 놓은 핵무기도 설계 결함 등이 발견될 경우 다시 실험을 실시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컴퓨터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을 통해서도 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무기의 경우 고폭 장치에 고도의 정밀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핵실험 필요성이 크다. 하지만 우라늄탄의 경우 상대적으로 단순해 핵 실험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탄의 경우 핵 실험 없이 바로 실전에 사용됐다. 북한은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전인 5월 말 외신기자 등을 초청해 풍계리 실험장 갱도를 폭파 방식으로 폐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북한의 핵 실험이나 관련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한미 정보 당국의 첩보전도 치열하게 전개된다. 위성을 통한 감시활동 외에 지진파 감지를 통한 핵 실험 여부 판단도 이뤄진다. 우라늄탄이냐 플루토늄탄이냐의 구분은 핵 실험 직후 지하갱도에서 분출되는 가스를 포집해 분석하는 방법을 쓴다. 핵 분열 때 방사능 핵종(核種)인 제논(Xe)과 크립톤(Kr)이 나오는데 어느 탄이냐에 따라 그 비율이 다른 점에 착안한 것이다. 과거 북한의 핵 실험이 임박했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미국은 일본 오키나와((沖繩)기지에 있는 특수정찰기 WC-135를 한반도에 배치했다. 초정밀 포집장비가 달린 이 항공기로 핵실험 2~3일 내에 한반도 상공에 퍼지는 가스를 잡으려는 조치다.
북한이 핵무기를 실제 사용할 경우 우리 민족에게는 한국전쟁 이후 또 한번의 대재앙이 밀어닥치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20kt 수준의 핵무기를 가정해 피해 상황을 분석해봐도 가공할 피해가 나타난다는 점이 드러난다. 낙하지점의 지형이나 기상 등에 따라 영향을 받지만 통상 반경 2.5㎞ 이내의 사람은 50%가 사망하고 4㎞ 안에 있는 건물은 대부분 파괴된다. 방사선에 의해 폭파 지점 1.2㎞ 내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사망한다. 히로시마 원폭의 경우 전체 인구의 60.6%인 20만 명이 숨졌고, 건물 92%가 피해를 보았다. 서울의 인구밀도 등을 고려하면 피해는 크게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다. 미 국방부는 1.5kt의 핵폭탄이 서울에 떨어질 경우 62만 명이 사망한다는 모의실험 결과를 갖고 있다.
북미 회담 결렬 후 ‘새로운 길’에 관심 집중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