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이데올로기 충돌은 친일파의 빨갱이 몰이에서 그 기원을 찾았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려고 찍은 이념의 낙인”이 빨갱이라며, “지금도 정치적 경쟁 세력을 공격하는 색깔론으로, 청산해야 할 친일 잔재”라고 했다. 불공정한 부(富) 의 편중과 세습의 한 원인으로 “친일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리고 사는” 세태를 거론했다. 비뚤어진 권력기관의 병폐는 “일제의 칼 찬 순사”로 압축했다. 한마디로 일제는 악의 제국이란 인상을 남겼다.
문 대통령, 일본에 깊은 반감 표출
‘친일’ ‘빨갱이’ 등 대중 정서 자극
독일 통일 때 프랑스가 변수였듯
북한 문제에서 일본 역할은 중요
‘우리끼리’ 한계가 ‘하노이 교훈’
과거사 갇혀 미래 놓치지 말아야
일본은 고약한 이웃이다.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고, 아직도 속 시원한 사죄가 없다. 그렇다고 없어지길 바란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중국에 이은 세계 3대 경제대국으로서 일본의 힘과 외교력은 엄연히 존재한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아무리 장단이 맞아도 일본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30년 전 독일 통일 과정은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들에겐 독일도 일본처럼 불편한 이웃이었다. 특히 프랑스와는 19세기와 20세기 네 차례 패권을 겨룬 앙숙이다. 1806년 10월 나폴레옹이 베를린을 함락했고, 보불전쟁(프로이센과 프랑스, 1870~71)에선 프랑스가 무릎 꿇었다. 1차 세계대전(1914~18)에서 프랑스가 이겼지만 2차 세계대전(1939~45)에선 프랑스가 6주 만에 파리를 내주며 히틀러에게 굴욕을 당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을 때 프랑스와 영국은 겉으론 환영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민족이다”라는 게르만의 외침에 전범국 독일의 악몽을 떠올리며 거칠게 반대했다. 콜 서독 총리의 집요한 설득을 거부한 채 프랑스가 끝까지 어깃장을 놨다면 1990년 10월 3일의 통독은 영원히 무산됐을지 모른다.
당시의 동서독-미국-소련-프랑스·영국의 역학관계를 지금의 남북한-미국-중국-일본의 구도에 대입하면 미국을 중심으로 데칼코마니처럼 포개진다. 미국이 협상을 주도하고, 문 대통령과 서독 콜 총리가 중재자로 나서고, 소련과 중국이 동독과 북한을 후견하고, 프랑스와 일본이 캐스팅 보트를 잡는 매우 흡사한 그림이 그려진다.
통독 협상에 프랑스가 그랬듯이 북핵 협상에서 미국은 상수(常數)지만 일본은 상수를 흔들 수 있는 변수다. 하노이 담판의 결렬 이후 미국과 북한은 ‘빅딜’과 단계적 비핵화를 놓고 대치하는 민감한 국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보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해 버리는 기질을 지녔다. 북한과의 딜이 안 풀리면 없던 일로 할 수도 있는 인물이다. 분담금 문제로 시끄러우면 주한미군도 빼버리고 극동 방위선을 일본으로 후퇴시킨 6·25 직전의 ‘애치슨 라인’도 불사할 수 있다.
일본은 판이 깨지거나 한반도에 남북한 8000만의 경제공동체가 형성될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정치경제적 손익을 따지고 있을 것이다. 아베는 트럼프와 같이 골프 치고, 노벨상을 추천해주는 절친이다. 5월로 잡힌 트럼프의 일본 국빈방문 때 아베가 밀담을 나누면서 어떤 훈수를 둘지 궁금하다. 먹고 먹히는 강국들의 정글시대에 왜 선한 사슴을 잡아먹는 포악한 사자가 됐냐고 호통친 일을 후회하지 않길 바랄뿐이다.
우리 땅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조차 ‘우리민족끼리’는 할 수 없는 게 차가운 현실이다. 하노이 회담의 교훈이다. 과거사에 갇혀 한반도의 미래를 놓칠 수 있다. 아무리 밉더라도 일본과도 친해져야 한다. 서글퍼도 그게 국익을 생각하는 지도자다.
고대훈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