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끝나가는 무렵 밀린 일기를 쓰기 위해 잔뜩 쌓여있는 신문더미에서 일기예보가 들어있는 면을 열심히 뒤적거리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여름방학보다 겨울방학 숙제엔 더 꾀를 부렸습니다. 학년이 바뀌어 새로운 선생님을 만날 수 있기에 방학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말하자면 레임덕 현상이라 불러야 할까요? 이 필기 로봇을 사용하면 숙제를 학생의 필체로 직접 종이에 수십장이고 적어준다 합니다. 반드시 손으로 써 오라는 선생님의 지시를 첨단 기술과 학부모의 재력이 무력화시키는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어릴 적 중학교에 입학 후 담임선생님이 반의 모든 친구들에게 내주신 숙제는 하루 4장의 종이를 무엇인가로 빽빽하게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영어단어건 한자건 관계없이 손으로 채워나가며 배우라는 엄명이었는데 늘 들고 다니시던 지시봉으로 맞기 싫다면 검사 전 주말은 넓디 넓은 빈칸을 메우기 위해 반납해야만 했습니다. 벌써 수십년 전의 기억이 지금 중국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니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는 종이 아닌 듯 합니다.
숙제는 하셨습니까?
저는 지난 주말 가족들과 등산을 다녀왔습니다. 이 역시 아이의 건강과 사회성을 키워주려는 저와 가족의 숙제라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꾸준히 서점에서 신간을 살펴보는 것도 새로운 세상을 좀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한 숙제이고, 한 가지 일을 올곧게 오래하는 것도 내 인생의 자산을 축적하고 노후를 준비하기 위한 숙제입니다.
지금과 어릴 적 숙제의 차이는 알림장에 할일을 적도록 하던 선생님이 아니라 이제 스스로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삶의 선생님이 되어야 하기에 옛 선비처럼 스스로에게 나름의 채찍질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혹은 그때의 선비 또한 본인이 흔들릴 것을 저어하여 스스로를 두 개의 자아로 분리하고 자신에게 엄격해지는 삶의 규율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는지요.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