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는 비유하자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the clear and present danger)’에 해당한다. 미국 대법원은 공동체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닥칠 때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비상한 시기엔 비상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는데 옳은 말이다. 다만 그 비상한 조치라는 것이 장관들이 잔뜩 학교나 거리로 몰려나가 공기 정화기나 살수차 운행을 점검하는 식이었으니 맥이 빠진다. 이 시기에 취해야 할 비상한 조치라면 대통령이 선거 공약이라는 강박감에 급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는 것이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미세먼지의 위험 앞에서 현실적으로 문제가 드러난 정책 하나 거둬들인다고 문 대통령을 책망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탈원전이라는 게 애초부터 원자력 위험의 실체를 균형 있게 알리기보다 ‘판도라’ 영화 같은 공포 마케팅으로 여론을 일으켜 보자는 수단 아니었나.
미세먼지 앞에 길 잃은 문재인 정부
탈석탄이 최우선, 탈원전 족쇄 풀길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바람에 억지로 신재생과 짝을 맞췄다. 신재생의 짝이 탈석탄이 아니게 된 것이다. 억지 정책이 집행되자 탈원전으로 부족해진 전력을 석탄화력과 가스화력으로 메우는 바람에 석탄과 가스만 늘어났다. 이 정부가 말로만 탈석탄이지 실제론 석탄 사랑, 가스 사랑이라는 조롱이 나오는 까닭이다. 석탄과 가스를 사랑하면 미세먼지까지 초청하는 건 필연적 수순이다.
미세먼지를 해결하는 우선 순서가 탈석탄> 탈가스> 탈원전임은 자명하다. 미세먼지에 비상한 조치를 취한다면 탈석탄을 제1순위로 올리고 탈원전은 마지막으로 미루는 게 순리다. 탈석탄과 탈원전 두 마리 토끼는 관념 속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서 함께 붙잡는 건 불가능하다. 독일은 두 마리 토끼 중 탈석탄을 놓쳤다. 그 결과 갈탄 공화국이 됐으며 유럽에서 가장 나쁜 공기의 생산국이라는 오명을 안았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놓을 때가 됐다. 탈원전을 할 것인가 탈석탄을 할 것인가. 문 대통령이 스스로 발목에 채운 족쇄를 풀으시라.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