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은 가수 박은옥(62)은 남편 정태춘(65)의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40년 동안 삶의 동반자이자 음악적 동지로 살아온 사람의 말이니 이보다 더 정확한 평가가 어디 있을까. 정태춘은 1978년 ‘시인의 마을’로, 박은옥은 79년 ‘회상’으로 데뷔해 그 이듬해 부부가 됐다.
다음달부터 전국 15개 도시 투어
사회적 아픔 읊조려온 음유시인
“우리를 일깨운 건 5·18 광주항쟁”
음반·전시·책 등 기념행사 10여개
이들의 음악인생 40년을 기리는 이번 프로젝트는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어린이 잡지 ‘고래가그랬어’ 김규항 발행인·명필름 이은 대표가 공동 추진위원장을 맡는 등 각계의 참여로 기획됐다. 다음 달 13일 제주를 시작으로 서울·부산·전주 등 15개 도시에서 펼치는 전국 투어 ‘오리배, 날다’를 비롯해 전시 ‘다시, 건너간다’, 정태춘 시집 『노독일처』의 복간과 신작 시집 『슬픈 런치』 출간 등이 이어진다. 문학평론가 오민석이 쓴 가사 해설집, 음악평론가 강헌이 쓴 평론 등도 나온다. 이런 발자취를 담아 내년에는 음악 다큐 ‘노래, 마음이 부르지 목이 부르나’(가제)도 선보인다.
다음 달 초에는 40주년 기념 앨범 ‘사람들 2019’도 나온다. 6집 수록곡 ‘사람들’(1993)을 2019년 버전으로 바꿨다. 정태춘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죽음들이 있었는지 담기 위해 교통사고·산업재해 등으로 몇 명이 죽었다는 가사를 2017년도 자료로 다시 넣었다”고 설명했다. 1999년에 만든 미발표곡 ‘외연도에서’와 올 초 만든 신곡 ‘연남, 봄날’ 등 총 8곡이 수록됐다. 가수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딸 정새난슬도 함께 참여했다. 딸이 2013년 결혼해 2년 만에 이혼하면서 힘든 시기를 겪은 심경도 노래에 담겼다. 박은옥은 “지난 몇 년간 부침이 많았던 가족을 생각하며 썼다고 본인은 굉장히 울컥했던 모양인데 정작 저는 그 감정까지 안 가더라”며 “그래서 그냥 당신이 부르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역시 노래는 만든 사람이 부르는 게 더 섬세한 것 같아요. 이번엔 내가 정태춘씨를 위해서 공연하겠다는 마음입니다.”
시적이고 서정적인 음악으로 80년대 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이들은 ‘아, 대한민국...’(1990)과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 등을 사전검열 없이 발표, 오랜 싸움 끝에 음반 사전심의제 폐지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정동진/건너간다’(1998)와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2002)의 잇단 상업적 실패는 상처로 남은 듯했다. 이후 10년 만에 내놓았던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2012) 역시 큰 호응을 얻진 못했다.
정태춘이 ‘붓글’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자유롭게 글씨를 쓰고 가사를 담았다. “제게는 노래가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었는데 그 그릇에 계속 담기에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 거죠. 더 협소한 대중과 소통할 수도 있겠지만 붓글 가지고는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오랜 시간과 많은 돈을 들여서 앨범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 통로가 새로 생긴 셈이니까요.”(정태춘)
이 와중에도 정태춘은 ‘시장 밖 예술’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시장이 모든 걸 장악하고 있습니다. 시장성을 가지지 않은 모든 것은 사장되어 가고 있죠. 최첨단 산업 사회로 가고 있지만, 그 메커니즘이 통하지 않는 시장 밖에서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이 프로젝트 안에서 조금씩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정태춘)
“방탄소년단을 만든 빅히트 방시혁 대표가 서울대 졸업 연설을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자기 안의 분노와 불평이 동력이 됐다는 걸 보면서 참 의외다 싶으면서도 그것이 무언가를 바꿔나가는 동력이 되는구나 하며 정태춘씨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 생에서도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정태춘씨처럼 재능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목소리로 표현만 했지 글을 쓰고 만들어보지 못해서 참 부러웠거든요.”(박은옥)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