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미사일 대신 미세먼지다. 이미 국민은 익숙해지고 있다. 마스크는 일상이 됐고, 용각산이 다시 팔린다. 공기청정기와 목에 좋다는 미나리가 인기다. 2년 전 “아이 대신 미세먼지를 다 마시고 싶은 심정”이라던 대통령의 진정성도 시들해졌다. 미세 먼지가 극심해질 때 간혹 “정부가 손 놓고 있다는 소리까지 들어서 되겠나”며 장관들 질책하는 게 고작이다. 이번 미세먼지 재앙 때도 대통령은 5일 만에야 “(필요하면) 대통령과 총리의 힘을 적극 이용하라”며 “공기 정화기 보급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그것도 환경부 장관에게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다.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만 2015년 1만2000명에 달한다. 세월호 참사 7시간 뒤에 나타나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던 전임 박근혜 대통령의 뒷북 지시, 안전 불감증과 뭐가 다른가.
미세먼지 출구전략 삼아
탈원전 정책부터 폐기를
대선 공약이라고 신성 불가침한 것도 아니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 공약도 무르지 않았던가. 대통령 스스로도 “비상시기에는 비상한 조치를 하는 게 정부의 책무”라고 말하지 않았나. 지금이 바로 비상시기다. 이미 여권에서도 운을 뗐다. 지난해 송영길 의원은 “미세먼지 주범인 화력발전소를 퇴출하고 신한울 3·4호기와 스와프하자”고 제안했다. 못 이기는 척 송 의원 손을 잡아주면 될 일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국전력의 적자를 줄이고 전기요금 인상 걱정을 더는 건 덤이다.
탈원전 폐기는 중국과의 협상에도 유리하다. “국민 분노가 워낙 커 핵심 대선 공약까지 포기했다”며 중국발 미세먼지 감축을 강하게 밀어붙일 명분을 준다. 한 걸음 더 나가 국민에 인내와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탈원전 공약마저 접는 비상한 각오”의 대통령이 국민의 분노를 뒤에 업고 “불편해도 참아달라”는데 누가 토를 달겠나. 중국 탓도좋지만 우리부터, 대통령부터 할 것을 다 해야 한다. 쉽지 않고, 효과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익숙해지면 지는 거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